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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젊은대학/명지대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명지대 비정규직 노동자 복직투쟁 246일만에 무기 계약직으로 복직 합의

 명지대학교 비정규직 행정조교 부당해고 저지 투쟁 200일 맞이 문화제 中
"비정규직 악법"과 "부당해고"가 박살나는 그 날까지
사진출처 : 참세상 기사 중

 "2011년 10월 무기 계약직으로 복직, 복직 때 까지 임금은 전액 지급하기로 합의"
[대학노조 홈페이지 기사 중]
 부당해고에 맞선 246일간의 투쟁 끝에 명지대지부가 지난 20일 최종 합의했다.
합의내용은 10월 20일 자 복직 후 일반 조교직을 사직 하고 대신 2011년 10월에 무기 계약직으로 재 복직하기로 했다. 해고기간의 임금과 사직기간 동안 임금은 일시금으로 지급받는다.
하지만 합의안에 반대한 조합원 중 3명은 지부와 별도로 개별소송을 진행한다.

이와 관련해 서수경 지부장은 “모두가 함께 복직하지 못해 너무 아쉽다. 법률소송을 선택한 3명의 조합원 모두가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복직이 2년 뒤로 미뤄진 상황에서 앞으로 조합 활동을 어떻게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다”고 밝혔다.

또한 “아무것도 모르던 우리가 240일이 넘게 투쟁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지역대책위, 동문대책위, 학생대책위 등 수많은 단체와 대학노조, 민주노총 서울본부, 경기도본부 그리고 수많은 노동조합, 시민단체, 정당 등에서 함께 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앞으로 투쟁의 현장에 명지대는 빠짐없이 함께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받은 것을 갚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장백기 위원장은 개별소송을 하겠다는 조합원에 대하여 “노조활동을 통한 투쟁은 거부하고 소송만 하는 건 법률투쟁으로 볼 수 없다.”며 노조활동을 통한 복직투쟁을 권유했다. 또한 중노위에서 승소했지만 계약만료로 재 해고된 조합원에 대해서도 “무기 계약직으로 복직시키기로 합의했지만 향후 조합 활동을 계속할 의사가 없어 끝내 복직 합의를 포기한 점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전했다

 <블로거의 이전 글>
2008/12/15 - [명지대 비정규직 부당해고 사태] - 내가 다니는 대학이 바로 기륭이었고, 이랜드였다. (명지대학교 비정규직 행정사무원 해고 반대 투쟁에 연대하며...)

2008/11/01 - [명지대 비정규직 부당해고 사태] - 명지대에서도 노학연대가 필요하다.<저항의 촛불 11호 독자편지 기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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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에서도 노학연대가 필요하다
박용석
 
<저항의 촛불> 5호와 10호에 실린 성신여대연세대학교의 노학연대 투쟁 승리 소식은 매우 고무적이다. 특히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투쟁을 고무하고 연대해서 이룬 승리이므로 더욱 의미 있다.

내가 다니는 명지대학교에서는 지난 8월 조교 45명을 일방적으로 해고했다. 그리고 내년 2월 90명을 추가로 해고할 예정이다. 직원 노조가 전무한 명지대에서는 이에 맞서는 투쟁이 매우 소극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조교 협의회가 10월 13일 교내 홈페이지를 통해 “이와 같은 부당한 해고에 맞서는 행동을 벌이는 과정에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글을 통해 겨우 이 같은 사실이 알려졌다.

이들의 투쟁은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비정규직의 고용안전성이 보장되는 것은 학생의 보다 나은 미래를 보장하는 것이다. 대학 또는 비정규직 사업장의 소식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들의 투쟁을 고무해야 할 때다.

관련기사


다른 듯 닮은, 닮은 듯 다른 대학 내 비정규직 투쟁
<월간노동세상 기사 중>

※명지대학교

 서수경 지부장이나 조교들에게 학교 후배는 투쟁의 한 가지 이유이자 동지다. 처음엔 배짱으로 시작한 싸움이지만, 학교 후배인 총학생회나 단과대 학생회를 만나 도움을 요청하니 학교 측 눈치를 보는 곳이 대부분이라 “이해는 하고 취지는 알지만 본인들이 나서서 하기는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학내 운동권 학생회나 진보적인 마인드를 가진 학생 조직들이 소수화 되어 있는 형편도 안타깝다.

투쟁 초기 우왕좌왕하던 이들에게 투쟁을 지지하고 동참을 알려온 학생이 있었다. 다함께 명지대모임 04학번 박용석 학생은 10월중순경 조교협의회에서 올린 글을 보고 ‘비정규문제로 싸우는 조교들의 투쟁은 학생 모두에게도 올바른 일이다. 함께 하고자 한다’며 댓글을 달았고, 이름과 연락처를 남겼다. 이렇게 만나기 시작하면서 조교들은 자극과 활력을 받았다. 박용석 학생은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고무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또 이슈를 공론화해내고, 연대를 확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학내 서명운동이나 학생 단위와의 간담회를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시사인 고재열 기자의 블로그 ‘독설닷컴’에 글을 올려 인터넷으로 학교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이것이 회자되어 경인일보, 국민일보, 뉴시스, 오마이뉴스, 민중의소리 등 여러 매체에서 명지대 사태를 보도했다. “학내 서명을 받으면서 대다수의 학생들이 이 문제를 남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어요. 작년 이랜드 투쟁 등이 이슈화되면서 비정규직 문제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박용석 학생은 교육의 질을 고민해야할 대학이 상업화된 사기업처럼 이윤추구 논리로 조교들을 구조조정하는 현실이야말로 신자유주의의 병폐라고 비판했다.


※연세대학교
 2008년 한 해 동안 굵직한 투쟁 세 건을 승리로 이끈 저력은 어디서 나온 걸까? 김경순 분회장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힘없는 노동자는 아무리 옳아도 혼자는 대응할 수 없어요. 이 세상에 혼자서는 못살잖아요. 같은 입장은 가진 사람들이 연대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요.” 그 싸움에서 지도부와 리더의 역할도 중요했지만 공대위가 큰 역할을 했고, 학생들의 힘이 컸다는 것이다. “같은 학교 현장에서 발 벗고 나서 준 학생들이 제일 큰 힘이 됐어요. 여기에 공공노조라는 상부조직과 우리, 이렇게 3자가 힘을 모아 싸웠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던 거죠.” 학생들은 시간 있을 때마다 노동조합 사무실에 들러 함께 얘기를 나눴고, 학교가 노동자를 푸대접 하는 것에 같이 분노했다. 전적인 신뢰를 심어준 학생들 중에서 비정규노동문제를 고민하는 연세대 학생모임 ‘살맛’과는 노조 설립 때부터 관계가 깊었다. ‘살맛’은 2006년 9월부터 학내 미화노동자 인권실태조사를 시작으로 현장 노동자들과 만남을 시작했다. 2007년 3월 공식 발족한 뒤 서울경기공공서비스노조 고려대 분회 조합원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연세대 비정규노동자 조직화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학내에 있는 청소미화노동자들과 함께 1년이 넘게 긴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노조 창립에도 함께 힘썼고, 비정규 노동자 투쟁의 현장마다 앞장서면서 신뢰를 쌓아나갔다.

※성신여자대학교

 성신여대가 노학연대 투쟁 승리의 모범으로 떠오르면서 투쟁하는 많은 대학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 힘을 주었다. “노조를 만들지 않으면 내가 죽겠다”는 청소미화노동자들의 절박함, 이를 뒷받침해 연대투쟁을 벌인 학생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승리였을 것이다. 유승현(05학번, 작년 총학생회장) 학생은 학내 비정규노동자들과의 연대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고 했다. “학생들은 노조 설립 이전부터 어머니들과 만나왔어요. 체불임금이나 불안정 노동에 대한 항의방문 등 투쟁이 있을 때마다 함께 했죠. 건물마다 어머니들이 계시는 방이 있는데, 자주 찾아다니며 얘기를 나누었어요.” 김지희(06학번, 작년 총학생회 간부, 현 인문대 학생회장) 학생은 그러나 이것이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관계가 아니라고 말했다. “나이도 많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시니 안타까워서 도와드리는 게 아니에요. 노동자와 학생간의 대등한 연대지요. 우리가 아주머님들 딸 나이 대라 상당히 예뻐해 주셨는데, 이제는 ‘동지’의 끈으로 맺어져 있어요.”
성신여대 분회 조합원의 나이는 50대 후반에서 60대가 평균이다. 조합원 65명 중 1명만 남성이고 모두 여성이다. 8월 말 투쟁에 들어가면서 ‘우리는 어머니들께 우산을 씌워드리는 게 아니라 같이 비를 맞는 것’이라고 했단다. 그러다 9월 1일 개강을 맞아 교문 앞에서 첫 번째 선전전을 진행하는데, 하필 그날 새벽부터 비가 엄청 많이 왔다는 것이다. “그때 정말 비를 함께 맞으며 학생들을 만났는데, 가슴이 뭉클했어요.” 개강 이후 본격적으로 강의실에 들어가 이 사실을 학생들에게 알려내고, 유인물을 나눠주면서 동참을 호소했다. 9월 10일 모든 과학생회가 참여하는 확대운영위에서 투쟁 지지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모든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은 학생들의 지지와 연대 없이는 승리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역으로 말하면, 대학 내의 노동자들의 투쟁은 학생이라는 지원군이 있기에 쉽게 패배하지도 않는다.

물론 고무적인 사례로 든 이들 대학에서도 사실 이들의 투쟁을 지지하기보다는 훼방놓는 학생들도 있었다. 앞서 사례로 든 대학들과는 달리 몇몇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노동자들의 농성장을 심지어 각목을 들고와 부수기도 했었다. 하지만 노동자의 오늘이 학생들의 미래라는 것을 알기에 대학 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앞으로도 고무적인 소식들을 전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근 1년이 넘도록 노동자들과 부대끼며, 연대한 경험은 그 어떤 대학생활의 경험보다도 값진 것이었다.
바로 노동자들의 현재가 나의 미래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그들이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 말이다.

그것은 바로 미래에 내가 어떻게 보다 나은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희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