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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실천시민연대 48차 수요대화모임 지상중계 - ‘개헌’의 중심은 ‘국민’이다

48차 수요대화모임(07.01.24) 정리 - 송기춘 교수(전북대 법대)  

제48차 수요대화모임 지상중계 - ‘개헌’의 중심은 ‘국민’이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과 헌법학 교수]


 우리의 헌법은 크게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는 인간의 존엄성을 전제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 인권을 규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또 하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를 어떤 원리에 의해서 구성하고 운영하며, 권한의 부여와 통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규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민주주의 국가라는 공동체가 근본적으로 합의하는 이념과 가치에 대한 부분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헌법이기 때문에 조그만 정책의 변화에 좌지우지 되거나 개정이 얘기될 수 있는 규범이 아니다.


헌법 개정의 전제


  헌법의 이러한 성격 때문에 개정이 얘기될 때는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상당히 중대하고 △그 문제점을 개정이란 방법을 통하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려운 필요성이 있고 △그런 개정에 대해서 국민이 동의를 해야만 한다는 세 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더구나 헌법은 개정절차가 굉장히 까다롭고 비용 또한 많이 들기 때문에 중대한 사항을 개정 할 때 사소한 것을 같이 고친다면 모르겠지만, 사소한 어떤 문제를 위해 개헌을 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현행 헌법은 그동안의 역사에서 우리가 가졌던 헌법들 중에서는 비교적 우수한 내용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의 결과물이고,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반영해 규정한 한계도 있지만 그래도 시대상황을 광범위하게 포괄해서 규율하고 있는 꽤 괜찮은 헌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상황과 정신이 변했다면 현세대가 당연히 개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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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동의를 해서 내 자유를 구속한다는 것이 자유의 제한 원리이기 때문에 과거의 헌법이 문제가 있다면 개정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발언은 이런 측면과는 거리가 있다. 사실 지금의 헌법이 이전의 헌법들과 비교했을 때는 나아진 것이라 해도 정리되어야  할 내용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그런 부분에 대한 개헌논의는 비교적 활발하게 있어 왔다. 노 대통령의 이번 개헌 발언이 그동안의 개헌논의를 반영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정치적 의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크게 두 가지 내용을 제안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발언

 먼저 대통령 연임제다. 그런데 우리가 연임제냐 단임제냐를 얘기할 때 놓치기 쉬운 것이 있다. 우리는 흔히 두 제도 중 어느 것이 더 좋은지를 비교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지만 표면적인 장점과 단점을 열거해 두 제도를 비교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제도가 이전 제도의 단점을 시정하면서 장점도 보존할 수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단임제는 과거 정권이 임기연장과 장기집권을 했던 폐해를 통제할 수 있는 장치였다고 할 수 있다. 선거에 대한 심판과 책임을 지지 않는 무책임 정치가 가능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재선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소신 있는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연임제를 했을 경우에는 두 번째 임기의 시작과 함께 ‘레임덕’이 올 수도 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이러한 경우를 잘 보여준다.

 연임제가 단임제보다 압도적으로 나은 제도라고 하기 어렵다. 다만 한번만 하고 끝인 단임제에 비해 국정운영의 능력과 결과에 대한 평가에 따라 또 할 수 있는 연임제나 중임제가 우수한 제도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장기집권의 폐해를 경험했고, 아직까지 뛰어난 정치적 지도자를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서 단임제의 긍정적인 요소를 포기하기 어렵다.

 다음으로 임기일치 문제다. 이는 ‘여소야대’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여대야소’로 극복하겠다는 발상일 수 있다. 대통령제는 ‘죽음에 키스하는 것’이고, 대통령은 ‘선출된 군주’라고 불린다. 그만큼 엄청난 권력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정도의 통제력을 갖춰야 한다. 그것이 의회다.

 임기를 일치시키는 것은 대통령에 대한 의회의 적절한 견제 기능을 상실케 할 수 있다. 또 임기가 불일치하는 것이 국가권력의 분립을 가능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일부러 일치시켜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제헌의회와 이승만의 초대 임기를 다르게 했던 이유를 곱씹을 필요가 있다.

 임기 일치를 주장하는 또 다른 이유로 잦은 선거를 드는데, 선거는 국민의 의사표출과 국정에 대한 평가의 반영이다. 문제는 금력, 인력, 지역 등을 동원한 ‘선거문화’이지 ‘잦은 선거’가 아니다.
 

헌법개정, 이렇게 해야

 사실 헌법이 국민의 기본권을 최우선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지금 논의되고 있는 이른바 ‘원포인트 개헌’은 하찮은 것일 수 있다. 오히려 그보다는 국민의 기본권을 확장하고 민주주의를 신장시키는 방향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먼저 헌법 제8조 3항에는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가 규정되어 있다. 물론 정당은 공적인 역할을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측면이 강하다. 사적인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사적 결사의 자율성을 오히려 국가가 침해해서는 안 된다. 정당의 운영비를 국가에서 보조해주는 나라도 그리 많지 않다. 또 국민의 세금을 소모적인 정치에 쓰이게 만드는 것은 적절한 예산의 사용이라 할 수 없다.

 헌법 제27조 2항에는 ‘군인 또는 군무원이 아닌 국민은…군사법원의 재판을 받지 아니한다’는 조항이 있다. 이 조항에 대해 헌법학 책에서는 일반 국민이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지 않을 권리라고 굉장히 고상하게 말하고 있지만, 이것을 자세히 보면 군사법원에서도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규정하고 있는 군사상 기밀 등에 관한 죄 중 법률이 정한 경우와 계엄령 하에서는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해방 후 미군정이 군사재판을 했던 이래 한국전쟁, 박정희, 전두환 군부독재 하에서 광범위하게 군사재판의 역사가 이어져 오며 남아있는 잔재라 할 수 있다.

 제43조에는 ‘국회의원은 법률이 정하는 직을 겸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다. 그런데 겸직 범위에 국무총리나 장관은 없다. 국무총리나 장관은 겸직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이런 직을 겸하면서 의원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결국 총리나 장관으로 간 국회의원 수만큼, 그리고 그 사람과 관련된 국회의원 수만큼 의회가 적절한 통제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제45조의 ‘국회의원의 특권’도 문제다.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인데, 명예훼손이나 허위란 사실을 알면서도 했을 때까지 면책특권이 적용될 수 있어서 한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탄핵소추를 받은 때는 탄핵심판이 있을 때까지 권한행사를 제한하는 것도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볼 수 있다. 또 대통령의 사면권도 문제다. 법률은 엄정하게 집행돼야 한다. 대통령의 사면은 법률의 근본적인 엄정성을 상실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개헌’의 중심은 국민이다

 이밖에도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는 것은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철저하게 기수 중심의 서열화가 이루어지게 하고 있다. 결국 옷을 벗은 선배에 대해서는 조직을 위한 희생을 조직이 보상하는 논리에서 ‘전관예우’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자격을 법관으로 제한한 것도 문제다. 헌법재판소는 법원과는 다르다. 법관은 세세한 법률관계를 명확하게 판단하면 되지만 헌법재판관은 공동체의 운영 원리와 방향을 결정하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때문에 변호사나 법률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이나 공동체의 문제를 다뤄본 식견을 지닌 사람도 헌법재판관에 임명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개헌을 얘기할 때 정말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의 필요가 아니라 국민들의 삶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가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민주주의를 신장하는 관점에서 긍정적이냐 아니냐가 중심인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개헌이 불가피하다면 해야 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개헌은 신중해야 한다.

정리 - 박용석/ 인권연대 인턴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