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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고백: 나도 가끔은 2번을 찍는다 (박용석)


 

박용석/ 인권연대 간사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 두 분과 며칠 간격으로 만났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이십대 후반에 인권단체서 일하는 나에게 오십줄 교장선생님은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요점은 ‘하라는 대로 하는데 위에서부터 싸우니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학교폭력 생활기록부 기재 방침’의 시행여부를 두고 교육과학기술부가 전라북도와 경기도의 ‘진보’ 교육감을 고소한 바로 그 즈음이었다. 그 두 번의 대화는 똑같이 교장선생님들의 푸념으로 마무리됐다.

 

“차라리 몇 대 쥐어박고 회초리 칠 때가 나았는데……”

 

 한숨 섞인 그 한마디는 내게 회초리처럼 아프게 다가왔다. 나이 든 교육기관 수장들의 웃음엔 주름이 깊었다. 나이 어린 내게 보이기 위한, 애써 쥐어짜낸 웃음이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의례적’인 인권 교육을 하러 간 자리였다. 언젠가 그들이 가르쳤을 제자보다도 어린 나지만, 그 깊은 주름을 향해 무슨 말이라도 대꾸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수많은 말들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왔다가도 꾸역꾸역 되넘어갔다. 그러다 나온 당치않은 한마디는 물음도 탄식도 아니었다.

 

“인권이란 게 참 쉽지 않네요.”

 

 고작 그 말이 위로가 되었는지 그 분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 말은 자위에 가까웠다. 이 숨 막히게 답답한 순간에 처한 나를 위로하는. 그 말에 답하느라 끄덕거리고 있는 고개는, 어쩌면 이 불편한 상황을 에두르기 위한 약속된 신호였다. 우리는 서로가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렸고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불과 한 달이나 지났을까. 나는 현란한 텔레비전 화면에 빠져 엄마를 고생시키는 돌잡이 딸 엉덩이를 팡팡 두들겨 주고 있었다. 아이는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아내의 칭찬을 기다렸다. 밥을 먹지 않고 도망 다니는 아이의 못된 버릇을 고쳐준 당당한 아빠로서. 그건 상식이었다.

 

 그런데 웬걸, 아내는 앙칼진 목소리로 대들었다. “애가 뭘 안다고 그래, 꼭 그렇게 애를 울려야 돼?”라고. 인권단체서 회원들이 내준 회비의 일부로 생활하는 내가 아이 엉덩이를 때린다는 건, 그건 좀 아니었다. 어려운 인권에 비해 상식이란 녀석은 늘 쉬웠다. “차라리 몇 대 쥐어박고 회초리 칠 때가 나았는데……”라 말하는 상식, 아이 엉덩이는 몇 대쯤 팡팡 두들겨 줘도 된다고 생각하는 상식, 1번 아니면 2번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상식들 말이다.

 

 

 

사진 출처 - 뉴시스

 

 교장 선생님만 탓할 일이 아니었다. 최악과 차악을 두고 선택해야 하는, 18대 대통령 선거보다 더 어려운, 그리고 나쁜 객관식 문항이 그들 앞에 있었다. 그런 그들의 하소연이 아팠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내 이야기와 다르지 않았다.

 

 최악과 차악이 있을 때, 최악을 피한다며 차악을 선택하는데 우리는 익숙해져 있었다. 때론 말도 되지 않는 허깨비 최악을 상정하고, 진짜 최악일지도 모를 선택지를 합리화 하는 것은 또 얼마나 편한지. 그런 이들을 한심하다며, 때론 문제라며 비판하거나 비웃곤 하던 나였다. 그러면서 1번과 2번은 최악과 차악일 뿐이니, 최선인 3번을 찍어야 한다고 외치곤 했다. 하지만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어려운 인권은 쉬운 상식에게 자리를 내어주곤 했다. 상식은 힘도 셌다. 지금 당장 최선을 선택할 수 없을 때 차악을 선택하는 것은 늘 쉬웠다.

 

 다행히 아내의 앙칼진 물음은 내게 작은 희망을 가르쳐 주었다. 또 그 작은 희망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 작은 희망의 기준으로 세상을 본다면 인권도 그리 어렵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더 이상 힘 있는 상식에 내쫓기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사실 오래전부터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아이 엉덩이쯤 팡팡 두들겨도 된다는 내 상식에 앙칼지게 대들었던 아내, 우리 둘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내는 우리의 아이를 나보다 조금 더 많이 사랑했다.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낭만이나 떠들자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바꿀 힘은 결연한 의지와 확고한 신념과 해박한 이론 같은, 우리가 최선이라 부르던 어려운 것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그 답은 사실 그리 어렵지 않은데, 그간 나는 아주 어려운 또 다른 선택만 강요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알게 된 작은 희망은 그 고민의 답이 언제나 주관식이었단 것이다. ‘사랑’은 새로운 주관식 답안의 여러 소재 중 하나일 뿐이다. 그 깊은 주름에게 이제야 대답할 수 있다.

 

답은 아주 많습니다. 그만큼 우리에겐 희망도 많습니다.

나는 당신이 쓸 새로운 희망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아프로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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