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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본 2008, 그리고 2009년. 다섯번째 이야기
-한 소띠(85년생) 청년이 바라본,
  한국의 저항 운동과 국제 반전·반신자유주의 운동

자본주의의 필연적 귀결-전쟁

전쟁과 자본주의는 때래야 땔 수 없는 필수 불가결한 결합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블로거의 지난 글의 일부를 인용하고자 한다. 이 글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Subptime Mortgage loan) 사태 이후 경제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의 급증으로 '네이버 지식in'에 올라온 어떤 이의 질문에 대한 본 블로거의 답글 중 일부다. 

블로거의 지난 글
매우 급 떨어지는(subprime)담보대출의 위기조차 막지 못하는 매우 급 떨어지는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 
中 일부 발췌

< 전쟁은 왜 이윤율 하락을 상쇄시키는 현존하는 최고효율의 방법인가? >

전쟁은 과잉생산된 상품들을 일시에 소비시킵니다.
-자본주의경제체제의 본질 중 하나인 과잉생산으로 인한 이윤율 하락을 상쇄시킵니다.

노동의 생산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 군비 경제는 초 착취를 동반합니다. 군인들의 임금이 얼마인지를 생각해 보면 쉬울 것 같습니다. 이데올로기적인 착취의 정당화로 악용되기도 합니다.
(우익 민족주의-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라. 돈은 조금만 주겠다. 다 국가를 위해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쟁은 축적된 자본들을 가장 손쉽게 파괴합니다.
(축적된 자본이란 경제개념은 '대기업'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자본이 끊임 없이 자본을 축적 하기 위해 재투자되어야 합니다. 축적이 고도로 집약되면 이들 중 일부가 파괴되지 않으면 이윤이 감소 할 만큼 고도로 축적된 자본들이 과다하게 존재하게 됩니다. 이윤을 발생시키는 산업부분은 줄어들고 이윤이 하락하게 됩니다. 이들 중 일부는 스스로 소멸되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시장경제 옹호자들은 이들의 자기소멸이 마치 자연현상처럼 저절로 이뤄진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축적된 자본들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온갖 상쇄요인들을 사용- 앞서 말한 노동자들의 초착취 증가) 국가에게 압력을 넣어 자신들을 살릴 돈을 내놓으라고 때를 씁니다.(미국 국민의 혈세 1조 2천억 달러로 근근히 살아남은 의 월가의 대형은행들과 같이) 이들이 이런 식으로 살아 남으면 시장경제는 더욱 이윤율이 하락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이 아닌 다른 축적자본을 파괴하려 혈안이 되게 됩니다.
 
이것이 국가간의 양상으로 번지게 되고 전쟁이 발발하는 것입니다. 전쟁이 발생하면 앞서 설명된 두가지 요인으로 이윤율이 일부 회복되며, 전쟁을 통해 파괴된 축적 자본의 몫인 이윤과 이것을 재건하는 대에 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윤이 나머지 살아남은 축적자본들의 이윤의 기대량으로 이전하게 됩니다. 이윤율이 다시 증가하는 것입니다.


전쟁을 자본주의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특수한 사건으로 보는 경향들이 있지만, 자본주의하에서의 전쟁은 봉건국가들의 전쟁과 전혀 다른 동인으로 벌어진다. 바로 자본주의의 본질 중 하나인 이윤을 하락경향때문에 이를 해소할 상쇄요인들 중 전쟁은 그 효과가 가장 (자본가와 그들을 옹호하는 국가의 입장에서)탁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은 또한 매우 특수한 사건임은 사실이다. 일상적인 시기에 전쟁은 그렇게 쉽게 발생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학살에 쉽게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일상적인 시기에는 전쟁의 양상보다는 자본가들의 국가지배력 강화와 이를 통한 국가의 노동자 탄압과 친자본정책들의 일관된 추진을 강요하는 형식으로 이뤄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자본가의 노골적 공격)다.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자본가의 노골적 공격-신자유주의

 블로거의 지난 글
되돌아본 2008, 그리고 2009년. 세번째 이야기.
- 한 소띠(85년생) 청년이 바라본,
   꺼지지 않은 촛불과 고통 전가에 맞선 노동자 투쟁
中 일부 발췌

신자유주의란 단어의 상용화가 한국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 되었지만, 이것은 1960년대 대처, 레이건 정부의 등장과 함께 시작한다. 보다 엄밀하고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1960년대부터 시작된 장기간의 '이윤율 하락'과 함께 등장한다.

이윤율 하락 경향은 투자한 돈에 비례한 이윤의 양이 줄어드는 현상으로 자본주의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하나의 현상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자본가들은 본능적으로, 아니 필연적으로 노동자들을 더욱 쥐어짜야 할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란 이름으로 자본의 자유를 극대화 한다는 것은 바로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직접적 공격이었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란 이름으로 추진된 정책들을 한번 보자. 공기업의 사유화, 비정규직 비율 확대, 고용유연화, 복지예산 삭감, 임금 하락 등. 신자유주의는 노동자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정치경제 이데올로기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이와 같은 노동자들을 향한 공격이 지난 97년 외환위기와 함께 본격적으로 감행되었다.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정치경제 이데올로기는 앞서도 언급한 바 있다. 그들은 온갖 정치경제 이데올로기를 짜집기 하여 노동자들의 권리를 공격하여 자신들의 이윤을 추구해 왔다.

이들의 논리는 일관된 과학성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음이 이번 경제위기를 통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경제가 (일시적) 호황인 시기에는 최대의 이윤추구(노동착취)를 위해 국가의 개입을 극소화 해야 한다며(작은정부론) 악을 썼다. 경제가 불황에 직면하자 국가의 개입(천문학적 공적자금 투입)을 늘려서 자신들의 (심지어 복지와 임금을 삭감하여)이윤을 보전하라며 때를 쓰고 있다.

이들에게  한가지 일관된 경향이 있다면 자신들의 이윤을 위해서 노동자들을 착취하는데에 전혀 이견이 없으며, 노동자들의 저항을 분쇄하는 데에 국가의 권력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경쟁 관계에 있는 타국 자본을 파괴하는 전쟁에도 국가의 권력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인간은 보통 학살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주 특수한 경우(세계인구의 10%도 되지 않는 자본가들)를 제외하고 인간은 학살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방적 학살을 포함한 전쟁은 꽤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굉장히 모순된 일이다. 전쟁을 벌이고 싶어서 안달이 난 자본가들은 전세계 인구의 10%를 넘지 않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전세계 부의 80%이상을 지배하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인간은 학살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국가(의회)는 부의 80%를 지배하는 자본가들의 말을 충실히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블로거의 지난 글
되돌아본 2008, 그리고 2009년. 네번째 이야기
-한 소띠(85년생) 청년이 바라본,
  MB정권의 막가파식 독재의 심화와 저항의 확장
中 일부 발췌
 ...의회에는 애초에 두가지 압력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엄청난 재산과 어마어마한 이윤을 창출하는 대공장을 소유한 자본가들의 압력과 신발 두 짝과 자신의 몸(노동력)을 팔아서 하루하루를 이어가야 하는 노동자들의 압력이다.

여기까지만 얘기하면 상황은 매우 절망적이다. 전세계의 부를 장악하고 있는 자본가들에게 90%이상의 노동자와 서민들은 대항할 힘이 없이 무력하게만 느껴질 것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에 맞선 한국에서 벌어진 저항 -사진출처- 다함께 사진 자료실

인간은 보통 학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은 여기서 매우 중요하다. 전쟁이 벌어지면 매우 다행스럽게도 이 전쟁에 반대하는 수많은 대중들의 거리의 저항 역시 전세계적으로 벌어진다. 이들은 학살에 반대하기 때문에 이 학살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그것은 전쟁의 원인을 찾아 그것을 막고자 하는 행동으로 나아가고 그 중 일부가 전쟁의 원인을 자본주의의 본질적 모순으로 바라보게 된다.

물론 전쟁의 발생 원인은 자본주의만은 아니고 전쟁에 반대하여 이를 막아내려는 모두가 그 원인을 자본주의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매우 지엽적인 정치적(민족적, 종교적) 이유로도 전쟁은 발생한다. 하지만 자본주의하에서 전쟁의 원인을 이와 같이 보는 것은 전투라는 사건의 원인만을 보여줄 뿐 그 전쟁이 일어난(그리고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핵심 동역학을 보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전쟁의 벌어지는 원인을 막아내기 위한 실천행동을 함께한다. 그것은 자본주의에서 벌어지는 온갖 패악을 막아내고자 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노동자투쟁과 베트남 전쟁반대를 결합하여 투쟁을 전개하였던 미국의 덤프연대의 파업은 전쟁을 멈추는데 필요한 행동이 무엇인지 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교훈을 제공한다.

이들은 전쟁무기의 수송반대를 통한 학살의 저지와 자신들의 복지와 임금의 쟁취를 동일하게 보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파업은 자본가들에게 체제의 본질을 뒤흔드는 공포를 느끼게 했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익과 학살 반대를 등치시켰기 때문이다. 

 △영화 화씨911 中 블로거의 이전 글  병사의 시(Soldier's Poem-MUSE)-제 멋대로 편집해본 뮤직 비디오 中

이들의 이와 같은 저항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밀어붙이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자들에게 이롭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이 흔들리면 자신들이 향유하던 특권과 지위도 사라질테니 말이다. 그들이 이와 같은 저항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밀어붙인다면, 노동자들은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다. 소수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 왜 자신(노동자)의 자식들이 전장에서 죽어야 하는지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에게 잘못한 것이 없는 다른 국가의 국민들(노동자)을 죽여야 하는지 말이다.

 △영화 화씨911 中 블로거의 이전 글  병사의 시(Soldier's Poem-MUSE)-제 멋대로 편집해본 뮤직 비디오 中

그리고 오히려 자신에게 해악적인 것은 자신과 자신의 자식들을 전쟁터로 내몰고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라 강요하는 국가와 국가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가들이란 것을 어렴풋이 보게 될 것이다. 이들은 "자본가들의 이윤을 위해 노동자-서민의 생명은 안중에 없다." 

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이명박

"자본가들의 이윤을 위해서 노동자-서민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다"라는 말을 들으면 떠오를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바로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대통령 이명박이다. 이명박이 추구하는 정책들 일반을 보면, 이것이 전쟁이라는 재앙으로 인해 벌어지는 노동자-서민의 고통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다 분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2월 7일] 이명박 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희생자 제3차 범국민 추모대회 -사진출처: 다함께 사진 자료실

이명박 하에서 '신자유주의-노동자들에 대한 자본가의 노골적 공격'은 경제위기를 맞이하며 더욱 포악스럽게 변모하고 있다. 경제위기의 책임전가를 밀어붙이기 위한 경찰의 폭력으로 6명의 국민을 학살한 정권이 있다. 이 미친 정부는 2008년에는 광우병 위험 육우를 수입하겠다 하여 거대한 대중의 저항에 직면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끔찍한 일이 비단 대한민국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은 아니다.  

 블로거의 지난 글
그리스 민중에게 연대를1- 그들과 우리는 너무나 닮아 있다. (12월 18일 그리스 민중 투쟁 연대 기자회견 참가 후)
中 일부 편집 발췌

 광우병
전 세계가 광우병, 내지는 조류독감에 걸린 것만 같다. 자기 스스로 미쳐 죽어가고 있다. 광우병 위험 육우 수입을 강행하며 자국민의 주권보다 경제위기 시기에 쪼그라든 기업의 이윤이 훨씬 더 중요해진 우익정부는 급기야 국민 다수의 뜻을 거부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것이 비단 대한민국이란 조그만 땅덩어리의 우익 정부의 일만은 아니란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탈출구
우리는 이미 지난 여름 그 탈출구를 보았다. 앞서 자본주의란 '자본의 축적을 위한 재투자'만이 목적이라 말했다. 여기에는 인간이 없다. 인간은 단지 자본의 축적을 위한 일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주의란 본래 끔찍한 비인간적 체제지만 여기에 인간을 포함시키면 된다는 것이 일부의 주장이었다. 애초에 자본주의에는 인간이 없으므로 자본주의 자체를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 역시 일부의 주장이었다. 물론 나는 후자의 입장이 더 올바르다 생각한다.

자국 국민의 안전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그것이 이윤을 발생시킨다면 해야 한다는 권위주의 우익 정부에 맞서서 함께 싸울 때 이 두 의견은 전혀 이견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쟁취해야 할 인본적 가치들을 이루는 상당부분에 있어 함께해야 한다 생각한다.

우리는 이와 같은 전제로 지난 여름 거대한 거리의 민주주의를 만들었고, 그 열기는 아직까지 뜨겁게 조그만 영토를 달구고 있다. 그것은 마치 지표 밑으로 흐르는 용암과 같아서 언제고 분출할 활화산처럼 들끓고 있다. 
 

△ 아테네 거리를 행진하는 학생들 (출처: '다함께' 발행 주간지 <저항의 촛불> 기사 '반란의 그리스' 中)

이처럼 국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미친 짓이 비단 대한민국이란 조그만 나라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일면 매우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이에 맞선 한국의 촛불운동과 같은 저항 역시 전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본다면 우리는 절망하지만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란 세계체제의 본질적 모순은 한 나라에서는 저항을 효과적(일시적)으로 짓누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발생하는 저항들을 모두 짓누를 수는 없다. 이명박이 아무리 경찰을 동원해 공안정국을 조성하려 해도 곳곳에서 분출하는 투쟁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투쟁들은 서로를 고무하게 된다.

국제 반전-반신자유주의 운동은 어떻게 서로를 고무하는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앞서 '전쟁'과 '신자유주의'에 대해 다소 길게 설명했다. 바로 이것이 노동자-서민의 생명은 아랑곳 없는 자본주의란 끔찍한 체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에서 분출하는 이들 저항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이와 같은 자신들의 권리와 이윤을 착취하는데에만 몰두하는 자본가들의 공격을 막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전쟁일수도, 노동자들에 대한 가혹한 착취와 탄압(신자유주의)일 수도 있다. 그리고 곳곳에서 분출한 하나의 저항 중 이를 막아내는데에 성공한다면 이 결과는 급속도로 세계로 전파될 수 있다.

"프랑스의 사람들이 좋은 와인을 만들면 우리는 그것을 맛봅니다. 우리가 좋은 자동차를 만들면 프랑스 인들은 그 차를 탑니다.'<영화 Sicko 中>   이것은 국제적 저항이 어떻게 서로를 고무하고 그것이 어떻게 보다 나은 세계를 만들 수 있는지를 표현한 은유적 표현이다. 이 은유가 왜 참인지는 역사적 사례를 통해 보다 설득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번 연재에서 애초에 기획했던 역사적 사례와 그것의 파급 효과들을 모두 설명하기엔 글의 분량이 다소 길어지기에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연재에서 보다 현실의 사건과 관련된 쟁점들을 중심으로 적어보고자 한다. 

(사실 글을 적다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늦어지기도 했고, 앞서 말한 것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설명하기에는 찾아야 할 자료가 너무 많기 때문에 좀 더 준비를 하려고 함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와 같은 이유로 이번 연재는 여기서 마치고 다음 연재에서 보다 자세히 개개의 저항 운동들의 상호 연관 관계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
Posted by 아프로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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