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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은 살인은 물론, 학살을 저지른 이들을 온전히 처벌하지 않았다.
결론으로 나아가자면 대한민국은 아직 권위주의 독재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
단편적으로 이것을 증명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의 현존이며,
이승만과 박정희를 미화하며 찬양하는 이상한 나라의 정부와
전두환이라는 학살자가 전직 대통령 대우를 받는 현실이다.
 
 이명박의 취임식에 나란히 서있는 두 전직 대통령과 학살자. <자료출처> 오마이뉴스 

-> 블로거의 이전 글 <되돌아본 2008, 그리고 2009년. 네번째 이야기 -한 소띠(85년생) 청년이 바라본, MB정권의 막가파식 독재의 심화와 저항의 확장 > 中




 5·18 광주항쟁 30주년

전두환 독재에 맞선 위대한 민중 무장 항쟁
       김문성 enlucha@left21.com / <레프트21> 31호 | 발행 2010-05-08 | 입력 2010-05-06

 <전략>

이들의 목숨을 건 무장 저항은 국가권력의 폭압에 굴복하지 않는 평범한 민중의 용기와 저항 정신을 대변했다.

정규 군대를 끝내 이기지는 못했지만 광주항쟁은 국가권력의 주인이 누구인지 물었고, 민중의 뜻이 관철되는 것이 진짜 민주주의라는 걸 웅변했다. 학살자에게는 지울 수 없는 핏자국을 새겼다.

“우리를 기억해 주십시오”라는 27일 새벽 선무방송은 이들의 유언이 됐다.

 

부활

1980년 5월 광주항쟁은 군사적으로 패배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패배하지 않았다.

위대한 광주항쟁 투사들의 유언이 ‘살인마’보다 힘이 셌다. 장기 집권을 꿈꾸던 ‘살인마 전두환’은 핏자국을 지워 보려고 광주항쟁 구속자를 3년 만에 모두 석방하고, 학원 자율화 등 유화조처를 취했지만, 1980년대 청년 시절을 보낸 한 세대가 급진화하는 걸 막지 못했다.

광주 정신은 1987년 6~9월 전국적 민중 항쟁으로 부활했다. 1987년 민중항쟁이 폭발하자, 군부는 물론이고 미국 지배자들도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친미적인 전두환 정부를 보호하지 못했다.

광주항쟁 8년 뒤, 전두환은 산속 절로 쫓겨갔고, 그 8년 뒤엔 오히려 내란죄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1997년엔 마침내 일당 독재가 끝났다. 5월 18일은 바뀐 정권 하에서 국가기념일이 됐다.

그러나 당선하자마자 전두환 일당을 사면하고, 노동자ㆍ민중의 생존권 대신 재벌을 배불리며,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에 협조한 김대중ㆍ노무현 정부가 광주항쟁의 정신을 이어갈 순 없었다.

평범한 민중의 용기와 연대, 국가권력의 억압에 굴복하지 않는 “해방 광주”의 정신은 노동자와 학생, 피억압 민중의 투쟁으로, 촛불항쟁으로 이어져 왔다.

‘살인마’를 계승하는 자들이 집권한 지금, “해방 광주”의 정신이 거리에서, 작업장에서 부활해야 한다.


저 '살인마', 그리고 그 '살인마'를 옹호하고 계승하는 역사의 무뢰배들을 누가 처벌할 수 있을까?
<레프트 21>의 김문성의 기사의 마지막 문구로 글을 맺는다.

‘살인마’를 계승하는 자들이 집권한 지금,
“해방 광주”의 정신이 거리에서, 작업장에서 부활해야 한다.

Posted by 아프로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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