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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살맛나는사회

[경향신문 기고 글] 경대 형이 던진 불꽃은 살아있어요 언젠가 우리의 날에도 타오를 겁니다

[강경대 사망 20주기] 추모글 - 경대 형이 던진 불꽃은 살아있어요 언젠가 우리의 날에도 타오를 겁니다

<경향신문 2011년 4월 26일>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박용석

경대 형에게

한번 뵌 적도 없고, 살아계신다면 이제 마흔이 다 된 분께 감히 형이라 하는 게 어색하기도 하네요. 하지만 수많은 학생들에게 언제나 형으로 기억되는 형이 한편으론 부럽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형으로 남아있는 것은 형의 죽음을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함께 분노했고 함께 기억했기 때문이겠지요. 부당한 권력에 희생된 학생의 죽음에 분노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까요.

저는 2004년 대학에 들어왔습니다. 당시 대학생의 보수화는 사회적 이슈였습니다. 20대 다수가 투표하지 않았고, 정치에 무관심한 듯 보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 대학생들의 한나라당 지지율은 20대가 보수화되었다는 증거로 여겨졌습니다.

저와 친구들, 그리고 대다수의 20대는 ‘보수화된 아이들’이란 꼬리표를 달았습니다. 전 이 꼬리표가 너무나 분했지만, 부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한 해에만 200명이 넘는 대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지만 사람들은 분노하지도 그들을 기억하지도 않습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지 4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학생 노동자와 농민들이 여전히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몇 해 전 명지대에서도 노동자 130명이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했습니다.

당시 총학생회는 축제에 방해가 되니 농성 천막을 치워달라고 했습니다.

학생들이 천막을 철거하던 날 아침엔 비가 왔고, 노동자들과 함께 그 비를 맞으며 운 기억이 납니다.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고통을 외면하는 학생들을 비난할 수만은 없는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88만원 세대’ ‘꿈을 꿀 권리조차 잃어버린 세대’라고 합니다.

실낱 같은 희망이나마 움켜쥐려고 아등바등하는 이들은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는 것조차 너무나 힘든 일이라는 걸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정말 부정하고 싶던 현실을 인정해 버리는 것일 테지요.

형이 살아서 지금 이 세상을 본다면 후배로서 너무나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 여전히 죽음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살인의 주체가 정권에서 자본으로 바뀐 것이 차이일 듯합니다.

어찌 보면 더 가혹한 죽음입니다. 때론 소리 없는 죽음이고, 때론 비난받는 죽음이기도 하지요. 우린 그 죽음을 막아내지도, 그 죽음에 답하지도 못했습니다. 이런 우리들의 죄스러움을 부디 이해해주기를 부탁드립니다.

1991년 형이 던진 그 불꽃이 지금 우리에게도 꺼지지 않고 살아있다고 믿습니다. 2008년, 그리고 그 후에도 곳곳에서 아직 그 불꽃은 꺼지지 않고 살아있습니다. 전 형의 죽음에 자신의 죽음으로 답한 수많은 열사들처럼 그 불꽃이 언젠가 우리들의 날에도 활활 타오르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때에 부끄러움을 떨치고 다시 한번 형을 부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올 그날에 형을 기억하던 녀석이 있었다며 누군가 저를 기억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