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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살맛나는사회/국제 저항 운동에 연대를

그리스 민중에게 연대를1- 그들과 우리는 너무나 닮아 있다. (12월 18일 그리스 민중 투쟁 연대 기자회견 참가 후)

그리스 투쟁 지지 기자회견
△ 이 날 기자회견은 매우 급하게 조직됐음에도 불구하고 14개 단체가 공동 주최해 그리스 투쟁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보여 주었다.


그리스 투쟁 지지 기자회견

다함께 김지윤 씨도 “이 투쟁은 그리스 정부와 언론이 폭동이라 몰아붙이는 것과 달리 경제위기 고통에 맞선 정당한 저항”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프랑스 정부가 시위 확산을 우려해 교육 ‘개혁’ 입법을 연기하는 등 전 세계 지배자들이 시위가 확산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우리도 경제 위기의 고통을 떠넘기려는 이명박에 맞서 싸우자”고 호소했다.

 


그리스 민중 투쟁은 한국 민중들에게도 서민 죽이기 불도저인 이명박 정부에 맞서 다시 한번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고 있다. 그리스 투쟁이 승리할 수 있도록 지지와 연대를 보내자.


<저항의 촛불> 첫 화면으로 가기

본래 <그리스 민중투쟁 연대 기자회견> 참가 후기를 쓰려는 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적다보니 후기라기 보단 현 경제위기에 대한 나름의 분석과 저항운동의 중요성에 대한 역설로 글의 요지가 변해버렸다.

늦은 새벽 시간에 글을 다시 적기도 빠듯하고,
현 글의 내용도 그냥 실수로 쓴 글로 치부하기엔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내용이라 자평하며,
본래 기획에 맞는 글을 쓰면 자연스럽게 연재형태로 이어질 것 같다는 자기 합리화를 하는 동시에
본래 적기로 한 취지(국제적 연대의 중요성)의 글은 어차피 쓰긴 써야 하기에
이후에 추가 포스트로 이어갈 예정이다.

이리하여 애초에 글을 쓰기 시작하며, 연재할 심산으로 기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글을 기획연재의 1번으로,이후의 글을 기획연재의 2번으로
블로그에 게재토록 하겠다. 

그리스 민중에게 연대를1- 그들과 우리는 너무나 닮아 있다.

<사진출처>http://www.boston.com/bigpicture/2008/12/2008_greek_riots.html(본문 첨부 사진 포함)


세계경제위기
소위 'Subprime 사태'라 불리는 미국발 경제위기 이전에 이미 전 세계는 10년이 넘는 장기 경제 불황 상태였다. 대게의 신자유주의 정부는 그러한 경제 불황의 책임을 노동자-하층 대중들에게 떠넘겨 왔다.
한국과 같은 신흥공업국은 물론 선진국 문턱에 있는 개발 도상국들의 경우 더욱 노골적인 신자유주의화를 강제했다.

노동자들의 임금은 점차 삭감 동결되어 갔으며, 물가의 인상과 금리의 인하 등으로 실질임금은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갔다.
고용유연성이란 이름으로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정은 극심해졌다. 이윤과 효율의 논리로 공기업들을 민영화해야한다고 했고, 그 공기업들은 매각되어 이윤을 창출하는 구조로 탈바꿈되었다. 그간 값싸게 이용하던 공공재들의 가격이 두배, 세배, 수십배 치솟아 오르기 시작한다.

사상누각
이런 조처들의 효과는 하층 노동자들의 고통과는 반대로 상위 10%부자들의 이익은 두배 세배 늘어나게 만들어주었다. 이들의 과소비가 전체 경제를 부양하는 말도 안되는 경제 성장이 90년대초-중반 일시적인 호황을 만든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거품일 뿐이었고, 그 거품은 되려 그 거품을 만들어낸 실제 노동의 가치마저 위협할 만큼 하중을 키워나갔다. 아니 그 거품 자체가 노동자들의 피를 빨아 형성된 피거품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올바를 것이다. 그 피거품은 미국발 경제위기(Subprime 사태)로 그 피거품을 보충해 줄 노동자들의 피가 이제 더는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며 거침없이 증발하고 있다.

그것은 언제든 무너질 것이 당연했고,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것이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

그리고 그 파괴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논쟁거리였지만 말이다.

이제 이 논쟁은 어느정도 정리되어 가는 것 같다. 우리의 눈 앞에 참혹한 현실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 때 더이상 세계경제에 불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 역설하던 자들마저 '신자유주의'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임을 말하지 않는다.


속죄양
자본주의는 그것의 본질적 성격인 '끊임없는 자본 축적을 위한 재투자'만을 위해 내달린다.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 같은 이들이 주장한 경기순환론은 그 설득력이 사라지고 있다. 그는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을 역설하며 경기가 불황에 빠졌을 때 자본들간의 경쟁을 통해 자연법칙처럼 그 중 일부는 도태하고 일부는 살아남아 파괴를 통한 발전을 이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상은 어떻한가? 과거 2차 세계대전과 같은 끔찍한 파괴전쟁의 형태로 증명되었고, 이제 또 다시 전세계에 그 불황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세계경제위기는 자연선택설과도 같은 '창조적 파괴'가 과연 어떤 형태로 일어나게 될런지 '예측' 뿐만 아니라 '목격'할 수 있게 해준다.

그들이 주장하는 '창조적 파괴'로 파괴되는 것은 자본 중 일부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들의 피와 생명이다. 미국발 경제위기 이후 전세계 금융기업의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고로 투입된 비용은 가히 천문학 적이다. 미국 자동차 3사는 자신들의 이윤 감소를 국가에게 보전하라며 닥달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더욱 노골적이다. 은행들을 위해 혈세 120조원을 투입했다. 건설회사가 투기의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단순 전매(파고 사는 것을 목적으로 한) 토지를 국가가 환수해 준다고 한다. 경제위기에 이윤의 손실을 볼 기업들의 투자심리를 반등시키기 위해 이들을 대상으로 한 세금을 인하해 이들의 투자심리를 반등시키겠다고 한다. 그 세수 감소액만 70조원이 넘는다. 이것과는 정 반대로 수도, 전기, 가스, 대중교통 요금 등은 일제히 상승한다고 한다. 


광우병
전 세계가 광우병, 내지는 조류독감에 걸린 것만 같다. 자기 스스로 미쳐 죽어가고 있다. 광우병 위험 육우 수입을 강행하며 자국민의 주권보다 경제위기 시기에 쪼그라든 기업의 이윤이 훨씬 더 중요해진 우익정부는 급기야 국민 다수의 뜻을 거부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것이 비단 대한민국이란 조그만 땅덩어리의 우익 정부의 일만은 아니란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이탈리아, 독일, 그리스 등 전세계 어느 곳에서도 국민을 위한 정부는 눈을 씻고 찾아보기 어렵다. 전세계 대중들의 관심과 이목을 받았던 오바마 미 신임 대통령도 이 점에서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설득력 있는 전망이다.


전쟁
전세계는 또 다시 전쟁을 치르고 있다. 1930년대 대공황이 제 2차 세계대전이란 끔찍한 축적자본 파괴행위와 군비경쟁경제로 극복되었음은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이미 미국의 구제금융으로 증발된 거액의 자본은 남한인구를 두번 이상 절멸시킨 비용과 맞먹는다. 전세계 구제금융 금액의 총합이라면 이미 2차 세계대전의 자본파괴행위를 뛰어넘은지 오래다. 그러나 아직까지 전세계 경제는 회생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절망
말 그대로 절망이다. '바닥을 치면 다시 주가가 오를 것이다. 지금이 주식을 사야 할 때'라는 어느나라 무식한 대통령의 말을 코웃음 치며 듣고 있다. 그러나 웃을 수만은 없다. 이러다 정말 내가 죽겠구나 하는 끔찍한 절망이 도사리고 있다. 어떤 이들에게 그것은 이윤의 감소지만 대다수의 이들에게 그것은 생존과 직결한 문제다. 88만원세대라는 이름의 청년세대는 꿈과 희망을 잃고 오늘도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으로 뛰어내려 세상을 등지고 있다.  

탈출구
우리는 이미 지난 여름 그 탈출구를 보았다. 앞서 자본주의란 '자본의 축적을 위한 재투자'만이 목적이라 말했다. 여기에는 인간이 없다. 인간은 단지 자본의 축적을 위한 일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주의란 본래 끔찍한 비인간적 체제지만 여기에 인간을 포함시키면 된다는 것이 일부의 주장이었다. 애초에 자본주의에는 인간이 없으므로 자본주의 자체를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 역시 일부의 주장이었다. 물론 나는 후자의 입장이 더 올바르다 생각한다. 

자국 국민의 안전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그것이 이윤을 발생시킨다면 해야 한다는 권위주의 우익 정부에 맞서서 함께 싸울 때 이 두 의견은 전혀 이견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쟁취해야 할 인본적 가치들을 이루는 상당부분에 있어 함께해야 한다 생각한다.


우리는 이와 같은 전제로 지난 여름 거대한 거리의 민주주의를 만들었고, 그 열기는 아직까지 뜨겁게 조그만 영토를 달구고 있다. 그것은 마치 지표 밑으로 흐르는 용암과 같아서 언제고 분출할 활화산처럼 들끓고 있다. 

 
희망
아직 희망이 있다. 그리스 민중들, 그들은 우리와 너무도 닮아 있다.
앞서 설명한 모든 것들. 그것은 비단 대한민국이란 단일국가에서 벌어진 일들이 아니다. 그리스의 우익정부, 프랑스의 사르코지 우익정부, 이탈리아, 독일 등 경제위기 시기의 자본주의 정부 대부분의 모습이다. 이들은 자본가들의 이윤을 보전하기 위해 그 위기의 책임을 노동자-하층 대중에게 전가시키는 신자유주의란 이름의 정치-경제 이데올로기 공세를 감행했다. 그리고 유사한 자국 노동자 민중의 저항에 직면해 있다. 그 시작이 어디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세계에서 저항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지금 저항이 가장 크게 타오르고 있는 곳은 그리스지만, 불과 몇개월전에는 '대한민국'이었다. 그리고 그 불꽃은 지금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리스 투쟁 지지 기자회견
 정의의 신발-


 우리를 위해 누군가가 대신
 신발을 던져주길 기다리고 있는가?


('그리스 민중에게 연대를2' 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