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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호 기고.

Good morning! 잠 못자는 숲 속의 미녀

 

박용석

 

아침 7시, 사장님이 나오고 나와 교대를 하는 시간이다. 땀에 전 옷은 자루에 담고 물에 젖은 수건은 노란 바께쓰에 담는다. 다행히 어제 저녁엔 술 마시고 진상을 부리는 손님이 겨우 두 명밖에 없어서 무게가 조금은 가볍게 느껴진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의 땀만큼 무게를 더해 수레에 실어 나른다. 찜질방이라 불리는 이 동굴에서의 탈출 준비다.

평일엔 노숙자와 일용직 ‘근로자’라는 이름 사이에 끼어 있는 이들이 팔 할인 곳이다. 그들은 술을 잘 마시지 않지만 마셨다 하면 자신과 같은 밑바닥 인생들에게 시비를 건다. 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만만한 존재다. 오늘도 나는 손님이란 이름의 왕에게 철저하게 당한 ‘근로자’란 이름의 패잔병이 됐다. 하지만 돌아갈 곳이 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이 암울한 동굴에서 탈출해 세상에서 가장 예쁜 그녀들에게 가고 싶다. 또한 돌아가야만 하기에 걸음을 재촉한다. 점점 해가 짧아져 아침 7시인데도 밝지 않다. 출근하고 등교하는 평범한 사람들과 달리 나는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들과 내 표정이 그리 다르진 않다. 아침은 똑같은 하루가 시작된 것이고 나만큼이나 싫은 어제의 기억을 가진 걸 테다.

문 앞에 도착해 주머니를 뒤적거려 열쇠를 찾는다. 이제야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여보, 아빠(라는 말은 당연히 못하지만)”라며 반기는 모습을 상상하며, 패잔병을 위로해줄 미녀들의 품에 돌아가는 것이 그저 기뻐 서둘러 열쇠를 돌린다. 문이 ‘철컥’하고 열릴 때. 아차! 미녀들을 깨워선 안 된다.
‘오전 10시에 집을 나와 12시에 시작하는 강의에 출석해 6시에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면 아기를 씻기는 걸 도운 후에 9시 반까지 출근하는 것도 빠듯하니 겨우 세 시간 남짓 쉴 수 있을까 말까인데, 미녀들이 반드시 잠들어 있어야 나도 잘 수 있다’라고 머릿속이 순식간에 재편성된다.

제발 아기가 자고 있기를 바라며 숨소리마저 조심히 문을 연다. 안타깝게도 자지러지게 울고 있다. ‘발소리가 컸나. 문을 세게 열었나. 찬바람을 몰고 왔나. 숨을 크게 쉬었나. 숨을 쉬지 말 걸 그랬나.’ 온갖 생각으로 자책한다. 두 미녀가 나를 위로하는 동화 같은 상상도 잠시 뿐, 작은 단칸방의 삶이라는 현실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스물일곱이란 나이를 먹도록 여태 학생이라 자기 손으론 밥벌이도 못하는 무능한 나였다. 그런 내게 아내와 아기가 생기는 사고가 벌어졌고 우여곡절 끝에 집을 나왔다. 부모에게 빚지지 않고 내 능력으로 살아보고 싶어서였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간 들인 등록금이 아까워선지 당분간은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꾸역꾸역 하고 있었다.

밤새 칭얼거리는 아기를 달래느라 한숨도 못 잔 아내는 울상이다. “저거 때문에 애가 자꾸 기침하고 못 자나 봐”라며 벽의 검고 푸른 얼룩들을 가리킨다. 가을을 지나 겨울이 다 된 11월임에도 작은 방은 곰팡이 숲이 되었다.

반지하도 아니고 베란다가 있는 데다 부엌과 방이 문으로 나뉜 꽤 ‘좋은’ 축에 끼는 원룸인데도 그랬다. 수도권에서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34만 원으로 이 정도 방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스무 곳이 넘게 발품을 팔아 겨우 구한 방이었다. 그런데도 방은 곰팡이 숲이 됐다. 아기가 추울까 봐 통풍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세탁물은 삶아 빨아야 하니 집안이 늘 습했던 탓이다. 그간 미룰 수밖에 없었지만 곰팡이를 해결해야 했다. 결국 오늘도 결석이다. 미녀들을 깨워서도 안 되지만 곰팡이 숲에 재울 수도 없으니 말이다.

우리 삶에 동화는 없었다. 아무도 날 위로해주지 않아도 되니 제발 잠들어 있기만 바라는 날들이 반복 됐다. 키스로 잠을 깨운다는 것은 복에 겨운 소리고 잘 수 있는 것만도 행복할 날들이었다.
이번 학기가 끝날 때까지만 버티면 어떻게든 될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었다. 하지만 애써 현실을 잊기 위한 마약 같은 상상일 뿐이다. 지금의 벌이로는 생계 유지조차 버겁다. 한 달에 이틀밖에 쉬지 못하고 버는 돈이 130만 원이라 학기가 끝나면 한두 개의 아르바이트를 더 해야 한다. 지금보다 벌이는 나아질 테지만 그때도 미녀들을 깨워 위로받기를 기대하긴 힘들 것이다. 동화까진 바라기도 벅차니 열심히 살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Posted by 아프로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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