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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영화 상영회 ‘반딧불’



오직 사랑을 위해


반딧불을 아는가? 딱정벌레목 반딧불이과의 빛을 내는 곤충으로 주 서식지는 한국과 일본이다. 한국에 주요 서식지로는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의 남대천 일원이 있다. 무주군 설천초등학교와 설천중학교를 졸업한 필자는 어려서부터 반딧불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반딧불이가 내는 빛은 옅은 황록색으로 밝은 빛은 아니지만 개울가에 뛰어들 때 한번에 날아드는 빛의 향연은 아름답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반딧불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자. 흔히 개똥벌레라고 부르며 동물의 배설물을 먹고 사는 것으로 인식하는데, 이것은 완전한 오해다. 반딧불은 애벌레일 때는 물속에 살며 다슬기를 먹고 산다. 그리고 빛을 내기 시작하는 성충이 되면 이슬 외에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성충기간은 짝짓기를 위한 기간으로 겨우 2주 동안만 살 수 있다. 이 동안 반딧불들은 사랑을 위해 자기의 꽁지에 몸 안의 화학성분을 불태우며 빛을 내는 것이다. 오직 사랑을 위해 말이다.


여기 그런 사람들이 있다. 반딧불처럼 긴 시간동안 물밑에서 자신을 갈고 닦으며 인내하다 작지만 아름다운 불빛으로 세상을 비추려 하는 그런 로맨티스트들이 있다. 소외 된 민중들을 찾아다니면 인권영화를 상영하는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영화제 ‘반딧불’팀의 활동가들이 그들이다. 그들이 자신들을 ‘반딧불’이라 부르는 이유도 필자가 생각하는 바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랑으로


문득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란 노래가 떠올랐다. 가사 하나하나 ‘반딧불’의 활동과 추구하는 방향과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은 필자에게만 국한된 것일까? ‘사랑으로’의 가사와 ‘반딧불’의 활동에 대한 필자의 감상을 비교해 적으며 이런 생각이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라 생각해본다.


 

<사랑으로>


작사: 이주호

작곡: 이주호

노래: 해바라기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그러나 솔잎하나 떨어지면 눈물 따라 흐르고

우리 타는 가슴 가슴마다 햇살은 다시 떠오르네

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일이 또 하나 있지”

- 그들에겐 소외 받는 민중을 위한 일이 그것이다.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아직 대한민국 사회는 인권에 대해 관대하지만은 않다. 그래도 꿋꿋이 활동하는 그들의 모습 같다.


“그러나 솔잎하나 떨어지면 눈물 따라 흐르고, 우리 타는 가슴, 가슴마다 햇살은 다시 떠오르네”

-냉혹한 현실에 당당히 맞서지만, 소외받는 민중들의 아픔에는 눈물 흘리며, 새로운 실천의 의지를 다지는 모습과 같다 하겠다.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필자가 가장 주목하는 부분이다. 앞서 모든 활동들은 비단 ‘반딧불’활동가만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이유로 활동을 하는 분들이 아직 많기에 훈훈하다. 필자가 이 부분에 가장 주목한 이유는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히려 활동하는 이들의 모습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이 향하는 곳


9월 4일, 국가인권위원회 7층 사무실에는 4명의 공공부문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이 7일째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반딧불’이 이곳에서 인권영화 상영회를 가지려 한 이유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어두운 곳, 즉 가장 소외받는 사람들은 누구인가?’라는 자문에 대한 그들의 답이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이번 상영회는 뉴코아 노조 투쟁사업장에서의 첫 번째 상영회와 구로구 선경오피스텔 투쟁사업장에서의 두 번째 상영회에 이어 세 번째다.



얼굴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투쟁을 시작할 때 조그만 아이였던 딸은 어느새 훌쩍 자라버렸다. 엄마와 같은 삶을 살게하고 싶지 않아 투쟁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그녀의 딸 그리고 관객들은 잘 알고 있는것 같았다.ⓒlefinion




이날 상영된 영화는 지혜감독의 ‘얼굴들’이란 다큐멘터리로 ‘씨그네틱스’ 여성 노동자
들의 길고 길었던,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투쟁을 영상화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대한민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산다는 것, 거기에 여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말해준다.

영화는 2001년 영풍의 자회사인 ‘씨그네틱스’ 반도체 조립공장이 안산에서 파주로 이
전하는 과정에 기존의 안산의 여성노동자들을 해고하면서 발생한, 이 길고 긴 투쟁 속의 여성 노동자들의 얼굴들을 조명한다. 이들의 80%는 기혼의 여성으로 집에서는
엄마이자 마누라다. “가정과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여성으로서 투쟁을 위해 가족을
설득해야 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어려운 투쟁이었다”고 말하는 한 여성노동자의 말은
이 영화가 우리에게 전하려는 가장 주된 메시지가 아닌가 한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라 생각한다. 이 영화의 제목은 ‘얼굴들’이다. 얼굴은 때로는 웃
는 낯으로, 때로는 성난, 때로는 슬픈 낯으로 사람을 대한다. 이 영화에는 ‘씨그네틱
스’ 여성 노동자들의 얼굴만이 나온다. 그러나 영상에 나오지 않지만 이 영화에는 무
수히 많은 또 다른 얼굴들이 있다. 7년이라는 길고 긴 투쟁을 지원한 보이지 않는 얼
굴, 이 영상을 찍으며 이들과 마주한 얼굴, 그리고 이 영상을 보고 있는 우리의 얼굴
이 있다.


얼굴 마주 하며 웃을 수 있는 사회


필자는 기독교 신자는 아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인류보편의 가치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세삼 생각해본다. 뭐 굳이 기독교 신자여야만 사랑에 대해 논한다는 것도 왜
곡된 편견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러한 편견들을 버리고, 미움과 질투, 시기를 버리고
사랑으로 얼굴 마주 한다면. 이 세상의 어두운 곳을 바라보려는 얼굴들이 많아진다
면. 여성이라는 것이, 그리고 비정규직이란 것이 무엇에 문제가 되겠는가?

소외받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얼굴이, ‘반딧불’이란 얼굴이, 이들을 지켜보는
우리의 얼굴이 함께 마주보며 웃는 그런 사회가 오리라 믿어본다.



박용석 기자
<2007/09/06 11:47>  

http://on20.net/press/22

Posted by 아프로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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