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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글.


사실 그리 당당하지만은 않은 가출
['가출청년'의 결혼·육아 수난기⑤] 책임져야 할 건 나인데


일자리는 구했지만

아르바이트를 구하는데 몇 번의 좌절을 겪은 후에 눈을 대폭 낮췄다. 언젠가 이 나라의 대통령 각하께서 청년실업에 대해 "청년들이 눈높이를 낮추"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했던가. 대통령 각하의 선견지명이 맞는 건지 눈높이를 낮추니 일할 곳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일자리들이 살아가는데 충분한 것들을 제공하지 않아서 문제지만 말이다.

 

▲ 일자리는 있는데 저 자리에 홀로 앉아 저녁 9시 30분부터 아침 7시 30분까지 하루 10시간씩 일하고 한달에 2틀 쉬면 130만원. 
ⓒ 박용석 

난 대중목욕탕 남탕 매점에서 하루에 10시간씩 한 달에 이틀 쉬며 일하는 조건으로 130만원을 벌 수 있게 됐다. 우리 세 가족이 살아가기엔 턱없이 부족했지만 일단은 일자리가 급했다. 당장 월세를 내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자리를 구하고도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떻게 계산해봐도 고정적인 지출과 예상 지출을 더한 것보다 월급이 적었다. 

수차례의 설득에도 동생과 아들의 뜻을 꺾지 못한 형과 어머니는 아버지 몰래 수원까지 가재도구들과 당분간 먹을 음식재료, 쌀과 물, 잡다한 생필품들을 잔뜩 실어날라줬다. 근처 마트에서 최소 일주일치 장을 봐주고 비상금도 쥐어주고 갔다. 절대로 쓰지 않고 고스란히 돌려줘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첫 월급을 받을 날이 아직도 까마득한데 점점 그럴 상황이 아니게 됐다.  

 

▲ 쌀 집에 쌀이 떨어진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었다. 이제는 안다. 
ⓒ 박용석   


공모전 마저도 아르바이트

급하게 돈을 융통할 곳을 알아봐야 했다. 쉽지 않았다. 경제위기란 게 실감됐다. 몇 통의 전화에도 기대했던 답변을 들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또 일주일 정도 지나자 정말 돈이 급해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마감일이 얼마 남지 않은 공모전 몇 개를 발견했다.

급하게 7편의 글을 썼다. 이 글까지 8편째다. 거의 보름만에 이틀에 하나 꼴로 글을 썼다. 글을 썼다고 말하면 글에 대한 모욕일 정도로 순식간에 글을 양산했다. 한때 내가 다니는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할 때도 주변으로부터 '자보기계'라고 우스개로 놀림받곤 하던 나였다. 그 때에도 글의 질과 상관없이 서너 시간이면 원고지 이삼십매의 글을 뚝딱 생산해냈다.

지금은 하루에 두세 시간밖에 못자고 학업과, 아르바이트, 육아 보조 및 가사를 겸업 하면서도 그렇게 해내고 있는 내가 나조차도 놀라웠다. 물론 그러다보니 뭐 하나도 집중해서 잘하고 있지 못하지만.

그 중 4편의 글이 이 글의 전편들로 <오마이뉴스>에, 또 한 편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에, 다른 두 편은 대학 신문사들의 문화비평에 각각 보내졌다. 공모전이라지만 <오마이뉴스>는 바로 기사화 되어 반응을 볼 수 있었고 첫 글의 반응이 예상보다 좋았다.

 

▲ 11월 22일 오마이 뉴스 메인 좌측 하단 이 글의 첫번째 이야기가 사는이야기 메인에 실렸다. 
ⓒ 오마이뉴스   
   
사실 나의 이야기들은 상식적으로 쉽게 공감하지 못할 이야기다. 이를 풀어내기 위해 글의 순서를 많이 바꿔야 했다. 소위 '각'을 좀 잡았다.

우리가 가출하기 전과 후의 삶의 이야기들을 먼저, 그리고 '가출'이란 직접적인 사건이 뒤로 미뤄졌다. 그러다보니 정작 초반에 서술됐어야 할 이 내용이 글이 4편이나 진행되는데도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사실 난 이 얘기를 솔직하게 말하기가 두려웠는지 모른다. 그다지 공감을 받지 못할 것 같아서 말이다.

이전 글들이 허위라거나 거짓이란 것은 아니다. 그 또한 고스란히 나의 생각이거나 삶의 기억이 맞다. 다만 좀 더 목에 힘빼고 자세 낮추어 해도 될 얘기들이었다.

어쩌면 지금부터의 이야기들이 이 글의 진짜 이야기가 될 것이다. 모순되고 혼란스럽고, 때론 절망하고 그 안에서 어떻게든 실오라기같은 희망이라도 붙잡으려 아등바등하는 나의 모습들 말이다.

그런 게 지금 20대의 모습 아닌가?


사소한 가출의 발단

지난 9월 13일, 추석연휴 마지막 날 드디어 우리의 아이가 태어났다. 조리원에 있는 동안  나와 그녀의 새 보금자리가 될 시댁에는 전에는 형의 방이었던 곳에 새로 도배를 하고 10년이 넘어 삐걱거리는 싱크대와 부엌장을 교체하는 '대공사'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사정으로 공사가 미뤄져 결국 조리원에서 퇴원하고도 한참 후에야 공사를 시작하게 됐다.

그녀와 아이는 일주일 정도 형의 신혼집에 가 있어야 했다. 결혼한 지 두 달이 채 안 된 신혼집에 처와 애를 맡기는 게 미안했다. 형은 '사고'친 동생에 쫓겨 8월말 급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그녀가 혹여 나쁘게 생각하면 형수는 모자람 없는 집에서 시집 와 신축 아파트에 신혼집을 차렸지만 나와 그녀는 그러지 못한다고 서운할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아버지만 모르게 하면 모든 게 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고 출장 산후조리사를 불렀다. 돈이 조금 모자랐지만 부족한 부분은 어머니에게 꾸어서 말이다. 경제위기와 사업 부도를 꾸역꾸역 극복한 아버지는 돈을 허투로 쓰는 것을 경멸하다시피 싫어한다.

그러나 일이 꼬이려면 꼭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녀가 형의 신혼집에 가서 지내기로 한 첫 날, 할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서울의 병원으로 올라오시게 됐고 할머니는 잠시 우리 집에 머무르게 됐다. 손자와 손자며느리, 그리고 증손녀는 할머니를 맞이하느라 형의 집에 가지 못했다. 예약한 출장 산후조리사는 맛벌이로 비어 있을 형의 집이 아니라 부모님 댁으로 오게 됐다. 겨우 하루만에 아버지에게 모든 사실이 들통났다.

 ▲ 엄마 머리채를 쥐고 흔들면 '맘마'도 나오고 놀아주고 재워주고. 아기는 그렇다. 지금의 20대는? 부모의 목줄을 쥐고 등록금 대라. 생활비 대라. 이제는 출산, 육아비까지 다 대라고. 내가 그렇게 하고 있었다. 
ⓒ 박용석 

그날 저녁 아버지는 당장 통장과 카드를 전부 내놓으라며 호통을 쳤고, 난 그게 분했다. 사실 아버지에게 전적으로 빚을 지며 살고 있으면서도 당시의 나는 그저 분하기만 했다. 하루 종일 방문을 걸어 잠그고 거의 이틀 동안 물 한방울 마시지 않은 채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처음엔 그저 그런 아버지가 서운하고 미웠다. 공복에 머리가 더 맑다고 했던가. 가만히 누워 있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모든 건 내 책임이었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그래서 나와 부인, 아이를 책임지지 못하는 나 때문에 모두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독립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 모든 걸 책임져야 할 건 나인데

"애가 아무리 말해도 나올 생각을 안 하니 니가 와서 얘기해 봐라"는 이유로 어쭙잖은 단식 농성 이틀째 날, 공사 먼지와 소음을 피해 형의 집에 가 있던 그녀와 아이가 집으로 불려왔다. 그녀와 나를 앉혀놓고 부모님은 나무라셨다.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인 전개였지만 난 그 길로 그녀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

부모님께는 단지 나무람이지만 그 나무람이 그녀에겐 '평범한' 이들이 상상할 수조차 없는 고통이란 걸 알기에. 심지어 그 나무람조차도 내가 원인이었으니 말이다.

"애초에 이 모든 걸 책임져야 할 건 나였다."

"다소 늦었을 뿐, 원래 이렇게 되었어야 할 일을 조금 늦게 할 뿐"이라며 집을 나왔다.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도  이런 우리의 얘기를 하면 부모로서 할 만한 얘기를 했는데 가출까지 해야 했냐며 날 나무란다. 나의 이야기, 나의 선택을 지지해주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어렵게 그녀의 얘기를 일부 꺼내놓고 지금까지 4편의 글들에 쓴 이야기들을 간추려 한참을 얘기해야 사람들은 그런대로 수긍했다.

그렇지만 끝내 한마디씩 덧붙였다. 내가 그렇게 함으로써 부모님도 상처받지 않냐고. 부모님의 상처는 어떻게 할 거냐고. 하지만 나는 애초부터 싹수가 노란 반골기질을 타고나서인지 그 얘기를 듣자 더욱 나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하게 됐다.

왜 다 큰 청년이 어쨌든 자기 부인과 애 하나도 건사하기 힘들어야 되냐고. 왜 그게 내 잘못이거나 부모의 잘못이 되어야 하냐고. 그리고 집에 '독립해' 나온 게 왜 부모에게 상처가 돼야 하냐고. 이 빌어먹을 세상에 묻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누가 이 세상을 이 따위로 만들었을까?

▲ 질문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력 각하 그러셨다면서요? "눈을 낮추라"고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구요. 님이 하란데로 다 했는데 이제 전 어떻게 되는거죠? 
ⓒ KBS 


그렇게 나와 그녀의 가출은 현재진행형이다.
철없는 가출이 아니라 진지한 독립이 될 날을 꿈꾸며.
끊임없이 자신과 세상에 물음표를 던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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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프로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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