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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글.


아이디 차단하고, 대자보 뜯고... 학교가 부끄럽습니다
['가출청년'의 결혼·육아 수난기⑥] 나 때문에 그녀도 '감시' 대상이었다


이전의 글에서도 내가 다니는 대학당국에 대한 비판이 종종 묻어나긴 했다. 하지만 해당 대학이 어딘지 본문 내에서 직접 서술하진 않았다. 나야 상관없지만 그녀가 어떤 피해를 받게 될까 봐 가급적 본문에서 대학 이름을 밝히진 않았다. 난 자기검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왜 이런 것들을 두려워하며 글을 써야 하지? 누가 날 이렇게 만들었지?'


대자보 부착할 때도 '허가'를 받아야 하는 대학

아이가 태어난 후 "졸업만 시켜줍쇼" 하며 얌전히 지내는 이전의 '좌빨 운동권 학생' 아빠의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일이 벌어졌다. 덕분에 그녀가 한동안 내게 숨겨왔던 더욱 참지 못할 사실도 알게 됐다. 

SNS를 통해 한 학우가 당한 일을 전해 들었다. 지난 5일, 'Occupy Seoul(월가 시위 연대 국제 공동 행동) 2차 대회' 참가 홍보 포스터를 학내에 부착하려던 대학원생인 친구는 게시물 부착 허가를 받을 수 없었다고 했다. 대학원생이기에 학교 '학생복지봉사팀'에서 부착을 허가해 줄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제까지 이 친구는 아무런 제약 없이 대자보 부착을 허가받았는데 갑자기 기준이 바뀐 것이다.

교육 조교로 근무하는 대학원생은 담당 교수와의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대학원 교학팀의 허가 기준은 학부보다 훨씬 까다롭다. 때문에 이 친구는 난처해졌다. 교학팀의 게시물 허가 기준대로라면, 대자보 허가 요청 사실을 '기록'하고 담당 교수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기준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교수실에서 '잘리지' 않고 근무하는 것을 시도하는 것은 모험이었다. 혹여 졸업 논문에서 불이익을 당한 대도 하소연할 곳도 없으니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이 친구는 학부생인 친구에게 부탁해 게시물 부착 허가를 받았다.

허가 받은 게시물을 학내에 부착하는데도 담당 교직원이 학생을 따라다니며 감시했다고 한다. 이에 항의하자 자신도 말단 직원(행정인턴인 듯했다고 한다)이라 시키는 대로 할뿐이라 했다 한다


 ▲ 서울을 점령하라 12월 12일(월)에 촬영한 학교 자유게시판이다. '서울을 점령하라' 2차 공동행동 포스터 옆엔 기업의 이미지 광고나 학원 광고 포스터들이 버젓이 붙어 있다. 이들 중엔 담당부서의 확인 도장이 찍혀 있는 것도 있다. 
ⓒ 박용석 


난 잠시 멍해졌다. 지난 2009년 3월에 나에게 걸려왔던 전화 한 통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 떠올랐다.

"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데 나한테 연락이 오는 거냐? 곧 너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가 있을 것 같다. 오늘 교수실로 잠깐 와라."

짧은 통화였다. 그리고 학과장 교수의 방에서 곧 징계위원회가 소집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징계위원회는 소집되지 않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학교에 중대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니, 그만할 것을 종용하는 은근한 '협박'이었다.


학교 명예와 면학 분위기를 이유로 아이디도 차단

당시 내 아이디는 차단되어 있어서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 거의 1년 넘도록 글을 쓸 수도 없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부당한 해고에 반대한 것이, 일방적인 학과 통폐합을 비판한 것이, 등록금 인상에 반대한 것이 허위비방과 명예훼손이자 면학 분위기를 저해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 면학분위기 조성에 위반 됨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것이, 학과 통폐합에 반대하는 것이, 노동자들의 부당한 해고에 반대하는 것이 면학분위기 조성에 위반 되는 명지대학교. 
ⓒ 박용석 


그리고 2009년 여름, 그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 벌어졌다. 나는 2007년부터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이어서' '크기가 너무 커서' '외부단체 명의가 들어가서' '현 정부를 비판하고 있어서' 등 수시로 바뀌는 평가기준으로 대자보 부착을 불허받아 왔다. 그런데 노동자의 죽음을 추모하자는 대자보 또한 허가를 받을 수 없는 것이 원통했다. 화물연대 박종태 열사를 추모하자는 내용의 대자보였다. 

화가 나서 소리치는 나를 학생복지봉사팀의 한 직원이 멱살을 잡고 수차례 밀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출동했고 나는 그를 '폭행죄'로 고소했다. 우습게도 나 역시 명지대학교 당국에 '업무방해'로 고소되어 있었다. 양자 모두 기소유예 처분을 받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이후 이 교직원은 다른 부서로 발령되었다가 올해 명지대학교 재단비리가 불거진 후 다시 학생복지봉사팀으로 발령됐다.

대자보의 내용을 검열하고 허가 여부를 결정하며 '불순한' 이를 감시하는 대학. 바로 내가 다니는 명지대학교의 모습이다. 애초에 학생들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의 자유가 게시물 사전 허가란 시스템을 통해 차단되어 있는 것이 문제다.

덧붙여 명지대학교는 하루에 한 번씩 허가를 받지 못한 '불법게시물'을 철거하는 부지런한 대학이다. 사회봉사단이 있는 덕분이다. 학교는 봉사학점을 이용해 학생들을 사회봉사단으로 부리고 명지 클린캠퍼스운동이란 이름으로 허가 받지 못한 '불법 게시물'을 철거하도록 시킨다. 이로써 학내에서 '불순한' 내용을 알리는 것이 차단되어 있다.

사회봉사단의 클린캠퍼스운동은 '2008년의 촛불집회' 참가 호소 포스터를 철거하며 본격화된 시스템이다. '불순한' 내용을 담은 촛불집회 참가호소 포스터는 당연히 부착 허가를 받지 못했고 이들에 의해 철거됐다. 당시 사회봉사단은 하루 세 번 대자보를 철거하는 놀라운 '부지런함'을 보였다. 덕분에 나 같은 '진보 좌빨' 학우들의 발은 퉁퉁 부어오르고 손엔 늘 테이프 자국이 찐득거렸다. 하루에 세 번 철거하면 우리는 하루에 네 번 붙였기 때문이다.

2009년에는 비정규직노동자 130명을 무더기로 해고한 후 이에 연대한 나를 비롯한 학생들의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 아이디를 차단하고 게시 글을 삭제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투쟁 소식을 집중보도한 <명대신문>의 한 면이 통으로 백지발행되기도 했다. 이때에도 학교 당국은 사회봉사단 학생들에게 투쟁 소식을 알리는 대자보를 하루에 세 번 철거하게 했다.

 ▲ 백지 발행된 <명대신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해고 소식을 다뤘다는 이유로 신문 한면이 통으로 백지 발행됐다. 
ⓒ 박용석 


자신의 여유시간에 학교를 깨끗이 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다는 '착한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봉사에 참가한 사회봉사단 학생들이 무슨 죄가 있으랴. 그런 '착한 마음'을 악용해 학생을 대립시키려는 악랄한 이들이 문제지. 그 악랄한 이들이 바로 명지대학교 당국이다.


나 때문에 그녀도...

그녀가 나와 사귄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아이를 임신했다는 이유만으로 학교를 다니는 기간이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고 짐작은 했다. 그래서 이 글로 인해 나와 그녀 사이에 아이가 생긴 것이 학교 당국에 알려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명지대 박용석'으로 검색하면 이 글의 전편들도 검색된다.

교직원에게 감시를 당했다는 친구들의 소식이 분하고 원통한데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어떻게 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더 많은 사람의 분노를 이끌어낼지 고민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을 듣고 한참동안 나는 멍한 채 있었다.

"오빠 사실 나도……."

그녀는 임신 초기에 유산기가 있었다. 약 1년간의 방송 외주사 막내 작가 생활은 그녀에게 비현실적인 이 시대 황금비율 몸매를 갖게 해줬다. 하도 굶고 잠을 못자서 살이 쪽 빠졌다는 얘기다. 직업 때문에 얻은 위장병을 달고 살고 팔다리가 유난히 가는 그녀에게 갑작스런 임신은 위험한 일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또 다른 시련이 왔다. 초기의 유산기가 어느 정도 지나 학교에 복학했을 때 그녀는 임신 사실이 알려지지 않게 하려고 많은 애를 썼다. 부끄러워서가 아니었다.

'평범한 모범생'이었던 그녀가, 대학생활 8년을 '좌빨 운동권'으로 살아 학생처 요주의 인물로 찍혀 있는 나와 연애를 한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자기계발에 바쁜 학생들은 나 같은 거 별로 신경도 안 쓴다. 학생처 직원들 사이에서만 소문이 퍼졌다.

그녀는 그들에게 임신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학생처 직원들은 그런 그녀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대학 신문사를 퇴임했기에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학생처 직원이 그녀에게 아는 척을 하며 나의 안부나 근황을 묻고 알 수 없는 한마디를 던졌다.
 
"네가 알아서 잘 해라." 

지난 2009년 나의 멱살을 잡았던 바로 그 직원이었다. 대체 뭘 잘하라고? 이후 그녀는 잘 알지도 못하는 교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학교를 다녀야 했다. 그들에겐 '인사'지만 그녀에겐 '감시'였다. 그녀는 그와 같은 사실을 나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참아왔다. 2500억 원 대의 유례없는 재단비리에 휩싸인 명지대학교 당국을 비판하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는 남편에 대한 그녀 나름의 내조였다.

 ▲ 알아서 잘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알아서 잘 했다. 나에겐 그런 일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고 종이도 오리고 풀도 붙여가며 알아서 잘 했다. 
ⓒ 박용석 


나는 그녀가 당한 일을 이제야 알았다. 너무 미안하다. 나는 그녀가 살아오며 겪었을 고통을 가늠하기도 벅차기에 나와 함께할 앞으로의 삶에서 더는 상처받지 않길 바랐다. 대중에게 고립된 활동가 특유의 '냉소와 자뻑'을 동시에 지닌 까칠한 남편 뜻을 받아주고, 또 웃게 만들어주는 고마운 그녀였다.

목숨 걸고 독립운동 하러 가는 남편도 아닌데, 그녀는 그간 사실을 숨겨 왔다. 혹여 내가 하는 일에 자기가 걸림돌이 될까봐 말이다. 이젠 정말 목숨이라도 걸고 이 대학을 뜯어 고쳐놔야겠다 다짐한다.

 ▲ 내조의 여왕 축제기간이었던 5월, 이제 막 입덧이 끝난 임신 4개월의 몸으로 남편과 친구들이 차려놓은 부스에서 '두리반'을 후원하는 모금 및 판매를 함께 도왔던 그녀다. 
ⓒ 박용석 


그렇지만 나는 또한 불안하다. 진짜로 목숨을 걸 수도 없고, 걸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나도 당신들만큼이나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학생이고, 평범한 남편이고, 또한 평범한 아빠다. 거대한 사립대학에 맞서 나란 작은 존재가 이기는 건 무척 힘들다.   

때문에 대학의 만행을 폭로한 이 글이 나와 그녀, 그리고 우리 아이의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할지도 모른단 걱정이 앞선다. 대자보를 부착하려다 감시를 당한 대학원생의 부당함을 알리는 것이 그 친구에게 되레 피해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도저히 참지 못해 이 글을 쓴다. 이렇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틈틈이 글을 쓰는 것 말고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혹여 그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버텨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단지 나 혼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2010년 10월, 대학노조 명지대 지부는 투쟁 246일 만에 복직에 합의했다. 그때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지만, 결국 우리가 승리했다. 

 ▲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구제 받을 수 없습니다 2009년 2월 행정동 건물 안으로 진입하려는 노동자와 학생들을 막아선 구사대 앞. 피켓을 들고 있는 게 나다. 밀고 당기기를 한참 반복하다가 뒤로 돌아섰을 때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울고 있는 눈들과 마주쳤기 때문이다. 
ⓒ 대학노조 명지대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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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프로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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