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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문화상 공모 글] 변혁과 야만 사이


 "……만약 가작을 두편 더 뽑아도 되었다면 [변혁과 야만사이]와 [KAIST사태와 오리엔탈리즘]을 추가로 선택했을 것이다. 앞의 글은 힘이 있고 박학했지만 너무 거창하고 그래서 피상적이었으며(비평은 좁게 들어가 넓게 나와야 한다.)……" 
    
    명지대학교 <명대신문> 12월12일(월)자에 실린 백마문화상 사회문화비평 부문 심사평 중 일부. 


[변혁과 야만 사이]가 내가 쓴 글이다. 비록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심사평에 실리는 영광을 누렸다. 더욱이 한국 페미니즘의 상징인 권인숙 교수와 <몰락의 에티카>로 한국 문학 비평에 획을 그은 신형철 평론가의 평을 받을 기회가 주어져 영광이다. 
 다만 몇가지 아쉽기도 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데없는 가출까지 하는 바람에 겨우 4일만에 글 을 써야 했다. 다만 몇일의 시간이 더 주어졌더라도 이보다 나은 글을 썼을거란 보장은 없다. 
 더 중요한건 오직 수상만을 위해 결론부를 뭉뚱그렸다는 것이다. 심사위원이 누군지 미리 공지되지 않아 너무 '급진적'으로 쓰면 안될까봐 말이다. 지금에야 반성하지만 수상과 상관 없이 그냥 솔직하게 대놓고 쓸 걸 그랬다. 그러면 후회라도 남지 않을테니 말이다.
 이렇듯 부끄러운 글이지만 좋은 평가를 받아 다행이다. 비록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수상한 것 못지 않은 기분으로 부끄러운 글을 블로그에 올린다.   




변혁과 야만 사이
- 99%운동, 유사한 역사의 반복인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인가
     

박용석
2011년 11월 14일





 < 일러두기 >
- 최대한 간결하게 읽히도록 각주와 후주를 생략했다.
- 각주를 대신할 첨언은 - - 사이에 첨부했다.
- 인용구는 “” 로 표시하였다.
- 논문이나 도서는 모두 《 》 로 표기했다.



막장 드라마
 
 텔레비전 드라마의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소재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곤 한다. 소위 ‘막장’이라 불리는 이런 방송의 무서움은 전혀 상식적인 않은 일들을 일상처럼 받아들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막장’이라 불리지 않더라도 전쟁과 학살, 폭력과 살인, 비리, 공갈, 사기, 협박 등 전혀 인간적이지 않은 일들이 드라마나 영화의 단골 소재다.

 방송 매체의 폭력적인 장면에 장시간 노출된 이는 폭력에 대한 죄의식을 전보다 덜 느끼게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렇다면 이 사회의 방송 매체들은 그런 비인간적인 행위들을 조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지는가.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방송들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그 장면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왜 뜬금없는 드라마 이야기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작금의 사회를 보자.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비상식적인 일들이 벌어진다. 우리는 ‘막장 드라마’에 장시간 노출된 시청자처럼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을 어느새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끔찍한 현실을 비추는 텔레비전을 잠시 끄고 주변을 돌아보자. 끔찍한 비명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가. 지구 한편에선 인구의 절반이 굶주리지만 반대편에선 수많은 식품들을 바다에 버리는 사회. 직장을 잃고, 또는 굶고 병들어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쓰일 돈은 없지만 지구를 수십 번 초토화 시키고 남을 무기를 생산하고도 무기를 더 만들기 위해 경쟁하는 사회. 환경 파괴와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이 예견되지만 그 원인을 제거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사회.


 열거하기도 힘든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 망할 텔레비전 드라마는 끝날 줄 모르고 계속 되어 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시스템 말이다. 마침내 그 드라마가 결말에 이른 듯하다. 그 드라마의 제목은 바로 ‘자본주의’다. 그리고 망할 ‘막장 드라마’를 잠시 꺼버린 것이 ‘99% 운동’이다.


위기를 설명하는 세 가지 방식

 1929년, 첫 번째 미국발 대공황이 벌어졌을 때 자본주의를 옹호해 온 학자들은 완벽하게 자신의 무능함이 입증됐음에도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늘어놨다. 태양의 흑점 탓을 하거나, 인구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것 등이다. 2차 세계대전의 전시경제를 통해 그 위기를 겨우 빠져나온 세계 경제는 이후에도 몇 차례나 삐걱거렸다.


 자본주의를 옹호해 온 학자들은 시장을 찬양하며 이렇게 말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거기에 있다고. 그리고 그 손의 전능함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예견, 아니 바람과는 달리 세상은 전혀 그렇지 못했음이 수많은 이들이 굶주림과 전쟁으로 죽어감으로써 약 이백년동안 수차례 처참하게 증명됐다.


 한편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이를 일부 손질해야 할 대상이라 주장한 이들도 있었다. 인류 역사상 손에 꼽히는 끔찍한 일들-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 이 벌어지기 전까지 그들의 주장은 대체로 무시됐다. 그리고 후에도 그들의 생각은 위기가 닥쳐올 때만 이용가능한 대체재 수준으로 여겨졌고 그렇게 사용되었다.


 이 체제가 본질적으로 잘못되었고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으로 교체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행동한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몇 차례 세상을 발칵 뒤집을 만한 사건을 일으켰다. 혁명이라 불리고 기억되는 사건들이다. 그러나 그런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다시 ‘보이지 않는 손’을 유지시키는 ‘보이는 주먹- 경찰과 군대- ’에 의해 재편됐다.


 그리고 그 이후의 세대들에게 몇 번의 또 다른 상상을 할 기회가 왔지만 무언가 부족하거나 무언가 잘못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기회들 중 일부는 세계를 조금은 바꿔 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 끔찍한 세계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여전히 누군가는 굶주리고 누군가는 차별 당했고, 꿈을 꿀 권리조차 없는 이들이 세계의 태반이었다.


꿈을 꿀 권리, 꿈에서 깨어날 권리

 꿈을 꿀 권리조차 없는 세대. 오늘날 한국의 젊은이들을 이렇게 비유하기도 한다. 이것은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단카이 세대나 니트(NEET)족과 같은 신조어는 일본에서 유독 두드러졌지만 70년대를 지나서는 주요 선진국 모두의 문제가 됐다. 만연해 있는 불안정 고용이나 홈리스 문제, 서방에 의해 침략 지배당하고 있는 중동과 아프리카, 굶주리고 있는 10억이 넘는 세계 인구 등.


 이들에겐 아주 오랫동안 꿈을 꿀 권리를 상상한다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이것은 비단 최근의 일도 아니며, 아주 오랫동안 지속된 자본주의의 고질병이다. 가난은 죄가 되고 돈을 가진 만큼만 꿈을 꿀 수 있는 사회 말이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상상은 금기시 됐고, 점차 희화 되어 급기야는 조롱의 대상이 됐다. ‘99%운동’이 ‘1%’라 부르는 그들이 이런 사회를 조장해 왔다고도 볼 수 있다.


 마치 봉건시대에 왕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었던 신하와 노예들처럼,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종교와 사상들처럼. 그것은 잘 짜인 각본과 같아서 극이 끝나기 전까지 사람들은 완전히 몰입해 다른 연극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전혀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 다른 연극에는 왕과 노예의 배역이 바뀔 때도 있고, 애초에 왕의 배역은 없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그것을 옹호하는 사상의 각본은 어느새 이 연극 말고 따로 보고 싶었던 연극이 있었음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심지어 과거에 새드엔딩으로 끝났던 몇 편의 연극을 떠올리며 그 연극을 각색해 해피엔딩으로 새롭게 창작하고자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200여년 남짓한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혁명이라 불렸던 모든 사건들이 그러했듯, 지금의 ‘99%운동’ 또한 그렇다.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99%운동’의 진원지인 뉴욕 주코티 공원에서 했던 연설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젝은 지난 10월 9일, 천여 명의 군중 앞에서 이 연설을 했고, 그 연설은 이번 시위의 상징이 된 '인간 마이크'를 통해 전달됐다.


 “우리는 시작이다. 끝이 아니다. 우리의 기본 메시지는 이것이다. 금기는 깨졌다. 지금 우리는 가능한 가장 좋은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 우리는 대안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한다.

 … 우리는 공산주의자들이 아니다. 만약 공산주의가 1990년 무너진 그 체제를 말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그 공산주의자들은 가장 효율적이고 무자비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권력을 잡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유럽이나 미국의 자본주의보다 더 역동적인 중국 자본주의 말이다. 공산주의자들이 운영하는 중국 자본주의의 성공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이혼에 이르렀다는 불길한 징조다. 여러분이 민주주의를 반대하고 있다는 협박에 굴하지 말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혼은 끝났다. 우리가 공산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한 가지 맥락이 있다면 우리는 공유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이다. 자연의 공유, 사유화된 지식의 공유, 생명공학의 공유 말이다.
 이들은 현 체제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 그들은 당신이 꿈을 꾼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진정 꿈을 꾸는 것은 지금의 방식이 몇 가지 장식만 바꿔 달면 무한히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몽상가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악몽으로 변해가고 있는 꿈에서 깨어났다.”

 지젝의 연설은 ‘99%운동’의 성격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명연설 중 하나다. 요약하자면 사람들은 꿈을 꿀 권리를 찾은 것이 아니라 지금의 현실이 악몽이며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마주하게 됐고. 이제 그 꿈, 아니 현실을 어떤 새로운 사회로 바꾸어야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젝의 연설 중 또 하나 매우 중요한 대목이 있다. 이전의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의 실패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과 자본주의를 일부 손질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 말이다.


역사의 악순환

 한편, 자본주의를 일부 손질하면 위기를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한 이들의 사상과 그 방식은 위기의 본질을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 이들은 국가가 닥쳐오는 위기를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역사상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케인즈주의, 개혁주의- 영국 노동당 등- , 수정주의- 독일 사민당의 베른슈타인 등- 등 이와 같은 이론은 매우 다양하지만 케인즈의 사상만이 ‘주류’로 인정되기에 주로 케인즈에 대해서 언급하려 한다.


 케인즈의 사상은 의회의 통제를 받는 국가가 이윤 추구만을 위해 내달리는 기업들을 통제할 수 있고 그렇게 하면 위기를 조절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역사는 이 생각을 증명해주지 못했다. 선출된 권력인 의회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들에 의해 좌우되곤 했다.


 자본주의 초기의 정치철학자인 칼 마르크스는 “브르주아 국가의 의회란 브르주아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한 브르주아의 위원회일 뿐이다”라고 역설했다. 저들에겐 의회를 압박할 포드와 제네럴 일렉트릭과 쉘이 있지만, 하루하루 자신의 몸을 팔아 사는 이들이 가진 것은 몸뚱이 뿐이다. 의회가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는 뻔한 일이다.


 전 세계의 국가, 즉 의회는 늘 자본가의 편에서 결정했다. 그리고 저항하는 자국 국민을 경찰의 곤봉과 방패, 때론 군대의 총검과 군화발로 억눌렀다. 국가와 기업은 그 저항이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을 때에야 아주 조금씩 양보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대부분의 ‘보편적 권리’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힘겹게 쟁취되었다. 1950년대 5년여에 걸친 노동자들의 총파업과 공장 점거가 오늘날 스웨덴의 복지 체제를 구축한 원동력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다.


 애초에 자본주의의 모순을 지적한 이들은 두 부류로 나뉘어 논쟁했었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에서는 혁명이 아닌 다른 선택들이 결국 야만으로 귀결 될 수밖에 없음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녀의 예견은 논쟁의 여지가 일부 남아있을지 모르지만, 일정부분 진실임이 입증되었다. 적어도 사회를 조금씩 수정해가다보면 더 나은 사회가 올 것이라는 생각이 틀렸다는 것 말이다.


 그럼에도 한때 더 나은 사회의 모델로 제시 되었던 소련의 실상은 자본주의를 조금 고쳐 쓰는 것 외의 다른 대안에 대한 상상력을 마비시켜버리기에 충분했다. 소련과 중국의 사회가 현존하는 모든 자본주의보다도 더 악독한 국가자본주의의 형태로 변화하는 것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케인즈식의 사회개혁의 손을 들어줬고 혁명의 판정패를 선언했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 케인즈주의의 정설은 산산 조각 났다. 선진국 경제들이 경기 후퇴로 고통을 겪었고, 케인즈가 설파한 수단들은 경기후퇴를 피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기는커녕 실업과 인플레이션만 가져다주는 듯 했다.


 케인즈의 사상이 침몰하자 그 자리를 시장의 실패 이후 40년 가까이 비주류로 밀려났던 시장만능주의의 충성스런 옹호자들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대표적 학자인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는 심지어 불황을 찬미하며, 동료이자 선배 경제학자인 조셉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의 개념을 들어 옹호했다. 불황 뒤엔 호황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불황이 한층 더 엄청난 부를 생산할 기반을 마련하기 때문에 환영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런 논리로 불황 시기에 노동자들의 임금과 복지를 삭감하는 것을 정당화했다. 되래 이런 정부와 기업의 공격에 맞서 집단적인 저항을 하는 노동자들의 조직이나 사회단체야말로 시장의 ‘창조적 파괴’를 방해하는 사회악이라며 말이다.


 그러나 하이에크는 이 과정에서 일부 거대 기업들의 카르텔이 점차 독과점화 되고 있다는 점은 말하지 않는다. 한줌의 거대 기업들이 세계의 부를 장악하게 되었다는 점을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절대로 ‘창조적 파괴’를 당하지 않기 위해 국가와 노동자들을 쥐어짜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의 관점으로도 진정한 비효율은 바로 그들인데 말이다.


 1970년대 이후 거의 모든 주요 선진국에서 실업률이 점증했고 경제성장은 둔화되거나 심지어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갔다. 거대 기업들의 이윤삭감을 메우기 위한 주요 선진국들의 부채는 나날이 늘어갔고, 그 부족분은 복지를 삭감하거나 보편세를 증세하는 방식으로 벌충했다.


 급기야 2008년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한 직후, 주요 선진국 정상이 모인 G8 회담에선 중요한 문제가 논의됐다. 당시 G8 정상과 재무장관들은 국가재정위기를 심화시킬 수도 있는 자국 은행에 대한 ‘보호무역적’ 조치를 하지 않을 것을 의결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이 회담에 참가한 모든 국가들이 그렇게 했다. 자국의 거대 은행과 기업들을 위기에서 구출하기위해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차관과 구제금융이 실행됐다.


 사회주의자는 물론 시장자본주의를 옹호해 온 이들조차 ‘부자들만의 사회주의’라며 이와 같은 조처를 비판했다. ‘창조적 파괴’는 일어나지 않았다. 세계의 정부들이 한 일은 1929년 대공황 때 세계 정부들이 한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고 일자리를 줄이고, 복지와 같은 공공부문 지출을 줄여 위기의 책임을 가난한 이들에게 떠넘기는 것 말이다. 반면에 자국을 기반으로 한 거대 은행과 기업들이 파산하지 않도록 막대한 구제금융과 차관을 제공하고 불필요한 토목공사를 시행해 부자들을 위기로부터 구출한 것 또한 그때와 똑같다. 

 이들이 옹호하는 시장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은 위기의 고통을 고스란히 가난한 이들에게 전가하기 위한 시스템이라는 것이 적어도 두차례나 증명된 것이다. 역사는 끔찍하리만치 유사하게 반복됐다. 역사가 그저 유사하게 반복되는 것이라면 이제 우리는 핵무기로 무장한 히틀러와 위성 위치 추적 장비를 가진 스탈린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역사의 재창조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이란 논문에서 더 이상 인류에게 새로운 역사-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소모적 논쟁- 는 존재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했다. 지금 누군가에게 그런 얘기를 한다면 코웃음을 칠 것이다. 중동의 튀니지에서 시작한 혁명이 이집트, 리비아, 시리아, 예맨, 요르단으로 확대되어 중동전역을 뒤흔들고 있다. 이들은 맨몸뚱이로 탱크에 돌을 던지며 미국과 서방의 제국주의는 물론, 그것을 빌미로 독재를 행하는 자국의 독재자 또한 타도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또 한편,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위기는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독일, 영국, 아이슬란드 등 전 유럽을 넘어 심화되었고 그에 맞서 그보다 훨씬 많은 80여개 국가에서 평범한 국민들이 위기의 책임을 전가하는 국가와 기업에 맞서 저항하고 있다. 뉴욕의 중심 월 스트리트는 물론, 유럽과 중동 전역에서 과거의 소련이나 중국 같은 사회주의란 이름의 국가자본주의가 아닌, 자본주의를 일부 고쳐 쓰는 것도 아닌,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있다.

 《미국 민중사》의 저자인 하워드 진은 마치 오늘날 ‘99%운동’ 일어날 것을 예견이라도 했던 듯, 소련이 붕괴하던 1990년에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란 극본을 썼다. 마르크스가 관객을 향해 홀로 독백을 한다는 설정의 연극에서 마르크스는 관객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더! 더! 더!’를 외치며 계속해서 많은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자본주의의 탐욕은 세상을 혼란의 구렁텅이에 빠트립니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어 버리지요. 예술, 문학, 음악, 심지어는 아름다움 자체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인간도 상품으로 만들었습니다.

 … 그때 나는 새로운 산업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일에서 소외된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기계와 매연, 악취, 소음이 사람들의 감각에 침투하면서- 사람들은 이것을 이른 바 진보라고 부릅니다만- 자연으로부터도 소외되지요. 사람들은 또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며 서로 적대하면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일어나면서, 서로에 대해서도 소외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삶이 아닌 삶을 살면서, 자신이 정말 살고 싶은 삶을 살지 못하면서, 그런 삶은 꿈이나 환상 속에서나 가능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되지요.
 … 그렇지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여전히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예, 물론 나도 그것이 가능성일 뿐이라는 걸 인정합니다. 이제는 그것이 분명해졌습니다. 나는 지나치게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러나 이젠 나도 압니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1990년에 쓰인 극본일 뿐이지만, 20년 뒤에 벌어질 일을 그 어느 강단학자들보다도 정확히 내다본 것이 아닌가.


 2011년 10월 15일에 벌어진 사건은 지금까지의 드라마가 끝나고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할 수 있다는 암시를 보여줬다. 세계 80여개국에서, 그 중 그리스와 스페인에서는 백만이 넘었고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도 십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체제의 본질을 비판하며 동시다발적인 시위에 나섰다. 얼마 후 11월 2일에는 미국의 항구 도시 오클랜드에서 또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교사와 항만 노동자들은 병가와 휴가를 내고 사실상 파업을 벌였다. 학생들은 학교 문을 박차고 나왔다. 상점 70퍼센트가 시위에 지지를 보내며 문을 닫았다. 시위대 수천 명은 은행과 항만을 봉쇄했다. 퇴역 참전 군인들은 시위대를 공격하는 경찰들을 막고 시위대를 보호했다. 이로써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세계 최대의 제국인 미국의 항구도시가 하루 동안 완전히 기능을 멈췄다.


 사람들은 자신을 억누르고 지배해온 체제와 그 권력자들을 단지 의심하는 것을 넘어 그들이 지배해 온 사회를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는 직접적이고 집단적인 행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이 세계로 확대되고 있다.


미래는 어떤 사회여야 하는가

 한동안 마비되었던 이들의 상상력이 재가동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외치고 있다. ‘1%’만을 위한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이제 새로운 드라마의 예고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그 드라마가 완전히 새로운 것일지 아니면 여전히 또 다른 막장 드라마로 흘러갈지는 두고 보아야 알겠지만,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들의 말대로 나도 ‘99%’이고 그들과 같은 드라마를 보며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자신들의 행동에 미래가 달려있음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막개발’을 일삼던 오세훈이 사임하고 ‘시민후보’ 박원순이 서울 시장이 됐다. 이 글을 쓰는 중에도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총리가 사임했다. 경제위기의 책임을 전가해 온 것에 대한 분노가 그들을 물러나게 만들었다. 이는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선택하기 위한 우리 ‘99%’의 행동 덕분에 벌어진 일들이다. 그러나 지도자 한두명이 교체되었다고 위기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 사회의 시스템을 일부 고쳐 쓰자는 이들과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바꾸자는 이들은 다시 뜨거운 논쟁을 시작할 것이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미래이기에 어느 것이 반드시 옳다 단언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시스템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하고 고쳐서 다시 쓰더라도 아주 많은 부분을 고쳐내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인류가 보아 왔던 그 어떤 재앙보다도 끔찍한 미래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역사는 항상 지배하는 소수와 지배당하는 다수 사이의 투쟁을 통해 사회전체의 혁명적 개조나 서로 투쟁하는 계급들의 공멸로 끝이 났다던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선언’이 21세기에 다시 세계를 배회한다. 마치 유령처럼.

 다시 하워드 진의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이제 더 이상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는 말은 하지 맙시다. 그냥 이 지구의 엄청난 부를 인류를 위해 쓰자고 합시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도록 합시다. 식량과 의약품,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 나무와 풀, 즐거운 가정, 몇 시간의 노동과 그보다 많은 여가 시간을 줍시다. 그걸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은 누구냐고 묻지 마세요. 인간은 누구나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