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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신문]기고 글. 명지둥둥섬, 그리고 54.3%, 그리고 30%

<명대신문에 바란다> _ 명지대학교 학보인 '명대신문' 퇴임기자의 기고란이다.

명지둥둥섬, 그리고 54.3%, 그리고 30%

 

박용석(경정 04)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 아니에요”란 말은 우리대학 학우들에겐 웹툰에나 나오는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몇해 전, ‘등록금설명회’에서 기획조정실장이었던 주상호 교수가 실제로 그리 말했다. 이 대학은 사상초유의 재단비리, 사학의 족벌세습, 빈번한 언론탄압, 부당한 노동자 해고, 학생 감시와 폭행, 종교자유권 유린 등 문제투성이다. 등록금만 엄청 비싼 대학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빼앗기고 정의가 실종 됐는데도 학생들은 침묵했다.

 

때문에 명지대학교가 ‘명지둥둥섬’이 되진 않을지 걱정스러웠다. 오세훈이 한강 한복판에 남겨놓고 간 ‘새빛둥둥섬’처럼, 저항하지 않고 변명만 늘어놓았던 과거의 상징이 될 부끄러운 공간 말이다.

 

하지만 우리 대학만 이런 게 아니었다. 이번 19대 총선의 잠정 투표율인 54.3%란 수치가 ‘명지둥둥섬’을 대신 변명해주었다. 지난 18대 총선에선 20대의 투표율이 30%도 채 넘기지 못했다. 연령별 투표율 집계는 약 2개월 후에나 발표되겠지만 이번 19대 총선에서도 그보다 크게 높지는 않을 듯하다. 이런 19대 총선 결과가 발표되기 무섭게 20대의 낮은 투표율이 다시 비난받고 있다. 소위 ‘20대 개새끼론’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대학이 이제는 수백개의 ‘새빛둥둥섬’에 지나지 않는지 모른다는 비관이다. 하지만 그 비관의 절반은 진실이 아니다. 20대의 절망과 냉소의 결과만 말하고, 그 원인은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빚을 진 사람은 희망을 잃고 절망한 사람은 투표하지 않습니다.” 영국 노동당의 토니 벤(Tony Benn)이 한 말이다. 이 말처럼 20대가 투표하지 않는 이유는 저항해도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란 절망 때문이다. 이 절망적인 세상을 만든 것은 기성세대다. ‘20대 개새끼론’은 20대를 속죄양 삼는 기성세대의 변명일 뿐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 절망하지 말자. 투표는 민주주의의 꽃이지 전부는 아니다. 우리를 절망하게 한 사회에 맞선 20대의 저항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고 그 절망을 합리화 하지도 말자. 투표는 민주주의를 위한 최소한이니 그마저도 하지 않는 것이 정당화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절망적인 세상에서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20대가 적어도 늘 30%는 있다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명대신문이 이들의 이야기로 희망의 역사를 적는 신문이 되길 바란다. 희망을 더 많이 이야기해야 더 많은 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