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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살맛나는사회

이름도 지워지고... 대학생 '애엄마'의 수모_ <오마이뉴스> 기고. 2012.05.11

 

 

[나만의 전쟁④ 육아와의 전쟁] "참 다행이야"라고 위로했던 내 하루

이름도 지워지고... 대학생 '애엄마'의 수모_박용석<오마이뉴스> 기고. 2012.05.11

 

우여곡절이지만, '참 다행'인 하루의 연속이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참 다행이야"란 그 말은 역설일지도….

 

젖먹이 아이를 둔 아빠로, 생계를 걱정하며 경제적 홀로서기에 힘쓰는 가장으로, 중간고사와 조별 발표를 걱정하는 학생으로 보내야 하는 내 하루를 돌아켜 보면 말이다. 그것을 애써 잊으려 노력하고 있을 뿐이었다.

 

분명, 강의실은 콩나물 시루처럼 가득할 것이다. 일찍 와서 자리를 잡아도 모자란 판에 한 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뒷문을 살짝 열고 살펴봤지만, 남은 자리가 있을 리 없었다. 주변을 살피니, 바로 옆 강의실에 수업이 끝났다.

 

책상 하나를 들고, 강의실 문을 열었다. 가급적 조용히 책상을 들고 들어가려 했지만, '끼익 끽' 책상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강의실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

 

"다른 학생의 수업을 방해했으니, 노래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타당한 이유가 있으면, 봐줄게요."

 

열심히 강의하던 유쾌한 젊은 강사가 구김 없이 농담을 던졌다. 적당히 거짓말로 둘러댈까 생각도 해봤지만,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엉겁결에 진실이 튀어나왔다.

 

"아기가 아파서요!"

 

이내, 강의실은 엄숙함마저 느껴질 정도로 조용해진다. 그저 학우의 유쾌한 집중을 위해 농담을 던졌을 강사가 되레 멋쩍어 하신다. 다행히 한 시간이나 늦었지만, 지각으로 체크하지 않겠다고 한다. 조용해진 학생들 속에 왠지 다른 종류의 인간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 집중된 이목은 이내 그러려니....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참 다행'한 일들이 많았다. '스스로 힘으로 살아보겠다'며 가출했던 내가 집으로 돌아와 다시 대학에 다니는 동안까지도 말이다.

 

 

▲ 진료확인서. 아이 덕에 지각은 면했지만, 아기는 아직도 아프다. '다행히' 이제 입원할 정도는 아니다.
ⓒ 박용석

 

 

 

학생이면서 가장인 내 삶에 대한 응원

 

  


▲ 곰팡이 꽃 핀 방. 가을을 지나 겨울이 다 된 11월임에도 방은 온통 곰팡이 꽃 천지가 됐다. 아이가 있어 창문을 열어 환기할 수 없었고, 빨래는 삶아 빨아야 하니 늘 집이 습했던 탓이다. 어떻게든 해결해보려 닦아봤지만 되려 일만 키웠다. 곰팡이 얼룩이 온 벽을 뒤덮었다.  ⓒ 박용석   
 


덜컥 애부터 낳은 학생 부부가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살아보려, 작년 10월에 집을 나왔다. 모아놓은 돈을 '탈탈' 터니, 500만 원 정도가 있었다. 덕분에 보증금 300만 원짜리 단칸방을 구할 수 있었다. 반지하가 아님에도 한겨울에 곰팡이 꽃이 피어오르는 방이었지만. 일자리도 생겼다. 저녁에는 찜질방에서 일하고, 낮에는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한 달에 이틀을 쉬며 일해 130만 원의 수입으로 학기를 마칠 때까지는 버틸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아주 잠시지만 행복하기까지 했다. 공모전마저 아르바이트가 됐던 그때, 몇 편의 수기 공모전에 응시해 2편이 수상을 했다. 부족함에도 과분한 수상이었다. 학생이면서 가장인 내 삶의 고난에 대한 응원이었다.

 

게다가 새해가 되자,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내가 지역 신문사에 취직할 수 있게 됐다. 어떻게든 남부끄럽지 않게, 혼자 살아가 보겠다는 내 의지가 성공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너무 짧았다. 겨우 한 달 만에 회사와 노조 사이에 끼어서 어설프게 해고됐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투쟁에 동참했던 운동권 학생이었던 전력이 문제가 됐다. 그래도 다행히 일한 동안의 임금은 보장됐다.

 

결국,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다시 백수가 된 무능력한 가장은 월세를 포함해, 생활비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으니까. 다행히 생계조차 막막해진 우리 부부와 아기를 받아줄 부모가 있었다. 우리 부부는 그런 다행함에 기대어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아이를 키우고, 부모님 집에 얹혀살며 대학에 다닐 수 있게 됐다.

 

모아놓은 약간의 돈과 부모님께 어느 정도의 용돈을 빚지고, 월 20여만 원인 정부의 육아보조금으로 그런 대로 버틸 만했다.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살아보겠다'는 자존심만 버리면 먹고 사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런 삶에 첫 번째 고비는 중간고사 시험기간이었다. 4월 중순, 감기에 걸려 한 달이 넘게 끙끙대는 아이 덕분에 두 학생 부부는 매일 밤잠을 설쳤다. 번갈아 가며 한 명은 아기를 안고, 한 명은 시험공부를 하며 그런 대로 시험을 치렀다. 부부는 혼자가 아니라 '참 다행'이었다.

 

아이 아프면 대학생 아빠는 넘어가지만... 엄마는?

 

  


▲ 조별 과제와 리포트. '무한경쟁사회'에서 대학생들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해주기도 하지만, 경쟁 상대의 실책을 가혹하게 들춰내기도 한다. 상대의 실점은 내 득점이 되는 상대평가의 덫이다. 아내는 그 덫에 걸려 이름이 지워지는 수모를 겪었다. 사진은 내가 이번 학기 중간기사 직전 동안 제출한 조별 과제와 발표 자료들이다.  ⓒ 박용석  


적어도 내겐 '참 다행'이라 위로할 수도 있는 하루의 연속이었다. 그녀도 그럴 줄 알았다. 얼마 전까지….

 

아기를 키우다 보면 별일이 다 생기기 마련이다. 그때마다 "아이가 있어서 그러니, 미안하다"며 양해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런 내게 조별 발표 조원들은 몇 번의 조모임에 빠질 수 있는 배려를 해줬고, 병원진료확인서를 내면 대부분의 교수는 안타까워하며 지각이나 결석으로 체크하지 않았다. '남자가 살다 보면 사고 칠 수도 있는 거'니까.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나처럼 몇 번이나 조별 모임에 빠진 그녀는 조장임에도 조별 발표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수모를 겪었다. 지각과 결석은 그대로 지각과 결석이 됐다. "제가 아이가 있어서요"란 그 말이 그녀에게는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했다 해도 '여자는 살다가 사고 치면 안 되는 거'다. "너, 애 있니?"란 질문은 그녀에게 상처만 남겼고, 지각도 결석도 지워지진 않았다.

 

이젠 그녀와 아이에게는 '참 다행이야'라 말할 수 있는 날이 아니었다는 걸 조금씩, 그리고 분명히 알아가고 있다. '어쩌다 나 같은 놈한테 시집와서, 어쩌다 나 같은 아빠를 두어서' 아내와 아이는 오늘도 다행하지 못한 하루를 보낼 것이다.

 

그녀에겐 전혀 다행하지 않은 하루였다는 것을. 이젠 더 이상 "참 다행이야"란 말로 우리의 삶을 위로받지 못할 것 같다. 쓰러뜨려야 할 적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전쟁을 치러야 하는 내 하루다.

아파서 끙끙거리는 아기와, 도처에서 가시 숨은 말로 상처 받는 아내와 아무리 노력해도 되돌릴 수 없는 펑크난 내 학점과 동시 다발적인 전투를 치러야 한다


출처 : 이름도 지워지고...대학생 '애 엄마'의 수모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