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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살맛나는사회

올림픽을 위한 거짓말은 이제 그만 _ <인권연대> 기고. 2012. 08. 14

올림픽을 위한 거짓말은 이제 그만

 

                                                   _ 박용석. 2012.08.14 <인권연대> 기고

 

 

 올림픽이 끝났다. “런던이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 찰 것”이란 예언은 적중했다. 십여 일간 치러진 ‘인류의 축제’엔 이번에도 시끄러운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자국 선수의 경기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기본에 판정 번복과 오심, 정치적 표현에 의한 메달 박탈 등. 언론은 연일 올림픽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다른 소리들은 잘 들리지 않을 만큼. 하지만 올림픽이 진정 인류의 축제인가, 아니면 국가주의를 확대하는 환상일 뿐인가 하는 논쟁도 여전히 뜨겁다. 내 의견은 이 중 후자다.

 

 물론 올림픽엔 긍정할만한 가치들이 있다. 누구나 공정한 규칙으로 경쟁하고 노력한 만큼 결실을 거둔다는 가치, 인간의 권리와 세계의 평화를 위한다는 가치들이다. 하지만 순위를 가리기 위해 0.01초의 시간까지 따지며, 오로지 이기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어떻게 인간의 권리와 평화를 대변할 수 있는지 나로선 이해가 되지 않는다.

 

 때문에 나는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 스포츠 경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 스포츠 경기들이 시장자본주의와 국가주의, 혹은 민족주의의 폐해를 총합한 ‘제국주의’의 장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이는 과도한 확대해석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권과 평화, 친선이란 가치들이 올림픽에 부여되는 것만큼 과도하지는 않을 것 같다.

 

 

영국 런던에서 열린 올림픽 폐막식에서 수많은 폭죽이 올림픽 주경기장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초에 프랑스의 남작 피에르 쿠베르탱이 올림픽을 고안한 목적은 인권과 평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세계 최강의 제국이었던 영국의 ‘근대 스포츠 교육’방식을 프랑스에도 수입하는 것이 쿠베르탱의 첫 발상이었다. 쿠베르탱이 고안한 근대 올림픽은 오늘날 수많은 미사어구로 수식되었지만 그 근본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강한 육체를 가진 프랑스인을 양성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말이다.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1회 올림픽이 개최된 이유가 제전(祭奠) 기간 동안 전쟁을 멈췄던 고대 올림픽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란 것도 미심쩍다. 당시 그리스는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의 연합 함대가 나라비노 해전을 통해 오스만-투르크로부터 ‘독립’시킨 나라였다. 독립 이후 그리스엔 바이에른 공국의 왕자 오튼 1세가 즉위했고 영국으로부터 내정 간섭을 받았다. ‘독립’이란 말은 무색했다. 오스만-트루크에서 영국으로 지배국만 바뀌었다. 이후에도 그리스는 크림전쟁을 비롯해 수많은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얽혀 평화와 친선과는 거리가 먼 나라였다.

 

 인과관계를 증명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런 그리스에서 첫 근대 올림픽이 개최된 이유는 1차 세계대전의 배경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1차세계대전의 배경엔 몰락하는 동방의 두 제국(중국과 오스만-트루크)의 영토를 식민지화 하려는 서방제국 공통의 목적이 있었다. 1차 세계대전 이전의 올림픽은 서방 제국과 그들의 지배를 받는 식민 국가들이 함께 모여 치른 체전에 불과했다. 또 한 번의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도 이런 실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 후, 냉전시기의 올림픽은 또 하나의 전쟁터에 불과했다.

 

 올림픽에선 인종과 여성에 대한 차별도 이어졌다.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올림픽까지 유색인종의 참가가 금지됐고 1968년, 멕시코 올림픽까지 겨우 6종목에만 여성의 참가가 허용됐다. 올림픽은 이렇게 인권과 평화, 친선이란 가치와 완전히 반대편에 있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은 끝났고 냉전도 이제 끝났다고들 한다. 세상이 바뀐 만큼 올림픽도 바뀌었다고 한다. 맞다. 오늘날 올림픽에서 인종과 여성을 차별한다면 세계적인 문제로 비화될 것이다. 하지만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올림픽이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나라가 어디인지를 평가하는 장이란 사실이다.

 

 올림픽은 공식적으론 국가별 순위를 집계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철저하게 매겨진 종목별 순위와 메달은 국가별 순위로 자연스럽게 치환된다. 군사력, 혹은 경제력으로 대표되는 국력의 순위와 올림픽 메달 순위는 늘 거의 비슷하다. 누구나 공정한 규칙으로 경쟁하고 노력한 만큼 결실을 거둔다는 가치조차 의심하게 되는 대목이다. 증거는 없지만.

 

 메달 집계로 보면 미국 16번, 러시아 7번, 영국, 독일, 중국 등이 각 한번씩 1위를 했다. 이 나라들은 어떤 의미로든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나라들이다. 지난 일요일엔 2012년판 국력순위가 결정됐다. 한국이 5위를 했다고 한다. 문제는 이 순위가 누구나 공정한 규칙으로 경쟁하고 노력한 만큼 결실을 거두는 나라, 인간의 권리와 세계의 평화를 위하는 나라의 순위가 아니란 점이다. 대체로 그 정반대의 나라들이다.

 

 누가 제일 힘이 센지 정하는 것도 그 나름으로 의미는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경쟁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 이유만으론 지금처럼 전 세계가 열광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더 이상 누구나 공정한 규칙으로 경쟁하고 노력한 만큼 결실을 거둔다는 거짓말, 인간의 권리와 세계의 평화를 위한다는 거짓말이 올림픽을 수식하지 않기를 바란다.

 

 올림픽은 어느 나라가 제일 힘이 센지 가르는 대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올림픽 개최를 위해 수십조 원을, 참가하는 데 수천 억 원을 쏟아 붇는 게 합당한 일인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내 생각에 그 돈이 올림픽에 쓰이지 않았다면, 인류는 더 많은 평화와 인권을 누리고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