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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혼자만 행복하면 미안한 시대

['가출청년'의 결혼·육아 수난기⑧]연재를 마치며, 우리 모두 행복하길
11.12.31 10:54 ㅣ최종 업데이트 11.12.31 10:54 
 

 ['가출청년'의 결혼·육아 수난기] 연재를 마치며

앞으로 쓸 글에서 조금씩 녹여내려 했던 이야기들을 압축하여 한 번에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압축하려다 보니 비유나 상징이 많은 점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정식 연재는 아니었지만 연재를 급히 마칩니다. 더 이상 '가출청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저지만 수
원 지역의 언론사에 입사가 결정 됐습니다. 수습기간은 생활고가 이어지겠지만 어쨌든 '가출'이 아니라 '독립'이라 감히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간 저의 글이 받아온 과분한 호응에 답하기 위해라도 연재의 마지막 글을 급히 적습니다.

그리고 《오마이 뉴스》에서 원고료로 제공하는 금액 이외에 독자들이 주신 과분한 후원은 쌍용자동차의 해고 노동자들에게 전달하려 합니다. '이런 저'이기에 후원해 주신 것일 테니 당연히 지금 '그런 이'들에게 전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옥중의 송경동 시인. 천일이 넘게 싸우고 있는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들. 천 번이 넘는 수요집회를 이어가는 위안부 할머니들.  대학구조조정에 맞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동국대학교 학생들. 제대로 굴러가고 있진 않지만 명지대학교의 재단비리 해결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등 여러분의 후원을 대신 전달하고 싶은 후보가 너무 많았습니다.

여전히 우리의 도움과 연대가 절실한 수많은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이번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여러분이 주신 희망을 전하겠습니다.



▲ 이제는 죽음을 멈춰요!! 19번째 죽음. 그리고 이제 희망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으로 가야 한다. 사진 출처: <오마이뉴스> 희망버스 하차... 희망텐트로 갈아탔어요 [현장] 쌍용자동차 희생자 19명 합동위령제... 평택 공장 앞 희망텐트 설치 최지용/유성호 기자
ⓒ 유성호


"넌 살만하니까 그럴 수 있는 거야. 난 너처럼 살 수 없어."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투쟁에 동참하자고, 운동에 나서자고 설득할 때 종종 듣는 말이다. 이 말은 '사실' 맞다. 그래도 살만하니까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할 수 있었고, 집을 나올 결심도 할 수 있었다.

글의 편수가 점차 늘어가고 예상 밖의 호응을 얻으며 내 글이 어떻게 읽힐지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했다.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생계에 보탬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이들에게 말이다. 난 그들에게 어쭙잖은 내 글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해야 할지도 모른다.

 ▲ 과분한 성탄절 선물 지난 12월 25일, <오마이뉴스> 탑기사 메인에 이 글의 7편이 실렸다. '20대 청춘! 기자상'에 공모하기 위해 쓰기 시작한 이 글은 소기의 성과를 달성해 '우수작' 선정되기도 했다. 여러모로 과분하다. 
ⓒ 박용석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이 됐을 때에 부모님에게 빚지며 사는 인생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난 그런 부모를 두어 조금은 더 행복하다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 모두 나보다, 혹은 나만큼은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겐 그렇지 않은 이 세상이 무언가 완전히 잘못됐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때는 자기만 행복하면, 왠지 나쁜 놈이 되는 시대였거든."

 ▲ 오래된 정원 지진희와 염정아만큼 잘생기고 예쁘진 않지만, 나는 이 영화에서 부모님의 젊은날을 본다. 16년 8개월만에 처음으로 딸과 통화하며, 아버지는 행복하게 살았냐는 물음에 현우(지진희 분)는 "그때는 자기만 행복하면 왠지 나쁜놈이 되는 시대였거든"이라 답한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기억조차 없이 어릴 때, 부모님은 작은 인문사회과학 서점을 운영하셨다. 큰아버지가 구속된 후 아버지가, 아버지가 구속된 후 어머니가, 어머니가 구속된 후 '운동권' 출신이 물려받아 운영하는 서점처럼 된 서점 '논장'이 그곳이다. 서점은 지난 2004년, 진보적 인문사회과학 서적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았다.

인문사회과학 서점을 운영한다는 이유로 독재정권 하에서 한 살배기 형과 뱃속의 나와 함께 유치장에 끌려가야 했던 어머니였다. 아버지는 당시 수배중이었다고 한다. 자유와 해방, 통일, 인권, 그리고 혁명을 논하는 책들은 읽는 것조차 금지되었던 시절이었기에. 그렇게 아등바등 버텨내며 같은 이름의 출판사를 차렸다.

 ▲ 나눔의 집, 그리고 아버지 어렸을 적에 아버지는 스님들의 그림과 도자기를 모아 바자회를 열었었다. 그 기금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나눔의 집'을 건립하고 운영하기 위한 것이란 걸 2007년에야 알았다. 난 아버지를 너무 몰랐고, 지금도 모르는게 많다.  ⓒ 박용석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국민학교'에 다닐 만큼 자라 어렴풋하게나마 기억을 할 수 있게 된 때에도 그런 처지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가끔 몇 명의 무리를 이끌고 집에 와서 며칠간 머물다가는 훌쩍 떠나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고 대학생이 되고서도 한참이 지나서 그 이유를 알았다. 아버지는 직책만 '사장'일 뿐,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을 출판했다는 이유로 수배자이거나 수배자와 다름없는 상태로 살았기 때문이다.

출판사 일은 편집장인 어머니가 거의 맡아서 했는데 항상 밤늦게까지 일했다. 빚을 잔뜩 껴서 산 낡은 4층 빌딩의 꼭대기가 사무실 겸 집이었기에 출퇴근도 따로 없었다. 어머니는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바닥에 불이 들어오는 장치를 대고 인쇄된 활자 필름들을 교정하느라 새벽녘까지 들여다봤다.

당시의 난 부모를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무언가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 시절 형과 나, 우리 형제의 친구들은 우리보다도 더 불행한 온 동네의 문제아들이었다. 우리 친구들은 겨우 '국민학생'이었지만 오락실 주변에 상주하며 지나가는 또래 아이들의 돈을 뺏고 물건을 훔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들은 또래보다도 훨씬 체구가 작은 우리 형제의 든든한 보호자였고, 또한 친구였다.

언젠가 그 중 나이가 나보다 한 살 위인 어느 형의 집에 갔을 때, '이런 데서도 사람이 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이 겨우 누울 만큼 좁은 지하방에 아버지와 그 형, 단 둘이서 살았다. 어머니는 집을 나가고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그 형은 우리 집에서도 돈을 훔쳤다. 확실하진 않지만 그랬을 거라고 '의심'됐다. 책상 서랍에 넣어 둔 세뱃돈이 사라졌고 거기에 그 돈이 있는 걸 아는 사람이 몇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형과 나의 친형은 어린애들 싸움답지 않게 온통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싸웠다. 어릴 적에 유독 체구가 작았던 우리 형이 더 많이 맞았지만 울면서 간 것은 그 형이었다.

아직도 혼자만 행복하면 미안한 시대다

그렇게 살던 삶이 조금씩 사람 사는 것처럼 되어가려던 때에 'IMF 외환위기'가 닥쳐왔다. 청소년이 된 나는 또 다시 아버지에 대한 추억 대부분을 빼앗겼다. 그 위기가 지나간 후에야 내 삶은 남들보다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가 됐다. 내가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쯤이었다. 사업 부도를 겪어 가족과 헤어져 살아야 했던 아버지지만, 그래도 여전히 작은 출판사의 사장님이었으니 말이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빼앗긴 아버지와의 추억을 담보로 해 얻은 세상이었다. 그래서 내 기준에 세상 사람들은 적어도 나만큼은 행복해야 했다. 이 세상이 그것조차 보장해주지 못하면 무언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내 바람과 많이 달랐다. 나보다도 행복하지 못한 이들이 지금도 그때만큼이나 많다. 나의 부모님을 비롯해 혼자만 행복하기엔 미안했던 청춘들이 목숨 바칠 각오로 바꿔 놓은 세상인데도 그랬다.

 ▲ 이랜드 홈에버 강남점 점거 파업 현장에서 2007년 여름, 제2회 대안언론연합캠프를 함께 주최했던 친구들과 원주로 MT를 떠났었다. 우리는 하루만에 돌아왔다. 이랜드 홈에버 강남점 점거농성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번쩍이는 갑옷을 두른 경찰 특공대와 비명을 지르며 끌려가는 여성 노동자들을 보았다. 결국 그녀는 혼절하고 말았다. 
ⓒ 박용석

대학에 입학하고 난 후, 그런 세상으로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짐짓 점잖게 우선 사회의 중요한 인물이 되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거라 여겼다. 물론 그래도 집회 현장들엔 꼬박꼬박 나갔다. 그렇게 하자는 친구와 선배들의 설득이 옳다 여겨 수동적인 '참가'를 했다. 그랬던 내가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점거 농성장에서 경찰특공대에게 끌려가는 여성 노동자들의 비명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가 지금까지 내가 싸워 온 이유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은 미쳐 있었다. 그리고 세상이 그런 비명소리로 가득 차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다니는 대학은 물론, 매일 지나는 번화가의 노점상, 골목의 재개발 공사현장, 어디에서든 가지지 못한 자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자란 젊음은 꿈을 잃고 있었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점점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됐다. 다만 그렇게 할수록 나는 점점 '별종'이 되고 있었다.

피투성이 어린 아이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알고 이후의 대책을 고민할 때. 별로 맞지 않았지만 온 마음은 피투성이가 되어 울며 가야 했던 '그때 그 아이'가 겹쳐 보였다. 무언가를 훔쳤거나 훔칠 것이라는 의심을 받으며 살아가는 이의 모습 말이다. 형과 그 아이가 싸우던 그때, 난 그저 울며 서 있었다. 그때 난 너무 어리고 아무런 힘이 없었지만 이젠 아니다. 이제는 잘못한 건 형도 그 친구도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잘못한 건 이 빌어먹을 세상이다. 이제는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왜 이따위인지 물어볼 순 있다.

별로 맞지 않아도 온 마음이 피투성이가 될 그녀를 보고 있기가 안쓰러워 집을 나왔다. 그리고 '찜질방'이라 불리는 곳에서 일하게 됐다. 그곳에서 사회 밑바닥의 얼굴들을 피해갈 방법 없이 정면으로 마주하게 됐다. 노숙인과 일용직 노동자란 이름 사이에 끼어 존재하지만 잘 보이지 않던 이들이다.


 ▲ 찜질방 평일엔 노숙자와 일용직 근로자라는 이름 사이에 끼어있는 이들이 팔 할인 곳이다. 그들은 술을 잘 마시지 않지만 마셨다 하면 자신과 같은 밑바닥 인생들에게 시비를 건다. 나는 그 중에서도 가장 만만한 존재다. 
ⓒ 박용석

아직도 피투성이의 모습들을 볼 수밖에 없다. 거리에서, 투쟁 현장에서, 지금 내가 일하는 이 찜질방에서, 심지어 거울에서 그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 내가 '별종'인 게 아니라 당신의 눈과 귀가 닫힌 거다. 이 세상은 몸과 마음이 피투성이가 된 아이들을 끊임없이 양산해 내고 있다. 우리가 아닌 누군가가 우리의 몫을 너무 많이 '도둑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춘의 연습장

그런 세상이 조금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쓴 글이었다. 이 글의 1편에서 '당연해선 안 될 지극히 당연한 것들을 나의 삶에서부터 바꿔내기 위한 실천이다. 그런 나의 삶이 여러분들을 응원하길 바라며'라고 짐짓 거창하게 운을 뗐다. 그리 말할 만한 글이었는지 지난 글들을 다시 읽어 보며 반성한다.

어쩌면 이 글은 십수 년을 함께 지내지 못해 어색한 사이가 된 아버지에게 나의 현재를 변명하는 편지였다. 글을 적어가며 '외톨이에 외골수에 고집쟁이'인 초라한 내 모습이 오히려 분명해졌다. 나의 부모님과 꼭 닮은. 어쨌든 그게 나고, 지금 20대의 일부다. 그 이야기를 적을 수 있었고, 일반화하기엔 독특한 이야기임에도 공감해 주시는 분들이 있었던 것에 힘을 얻는다. 

그런 나라도 손잡아 주고 등을 토닥여 주는 여러분이 있었다. 27이란 짧은 인생의 기억들을 정리해본 연습장에 비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아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기꺼이 내 청춘의 연습장이 되어 준 <오마이뉴스>도 감사하다. 다만 적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직 많이 남았다. 언젠가 하고 싶은 말을 더 잘할 수 있게 됐을 때, 마저 이야기 할 기회가 오기를 바란다.

혼자만 행복하기도 벅찬 세상에서, 우리 모두 행복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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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프로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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